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2020년 수상작가인 캠프(CAMP)는 인도 뭄바이에 기반을 둔 협업 스튜디오이다. “CAMP”라는 이름은 4개의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코딩으로 추출하여 조합하는 것으로, “마법 같은 가능성을 지닌 창작하기(Creating As Magical Possibilities)”, “미시적 힘에 의한 공유지(Commons According to Micro Power)”, “컴퓨터 예술 혹은 윤리적 정치(Computer Art or Moral Politics)”처럼 만들어진다. 이러한 약어의 가짓수는 십만 개가 넘지만 작가들이 강조하고 있는 조어들의 예시에서 드러나듯 캠프는 여러 작가들이 다양한 시민, 기술자 등과 개방적으로 협업하며 미디어의 문턱을 낮추는 참여적 작업을 통해 사회 시스템과 기술 하부구조를 탐문한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들의 에너지로 테크놀로지의 새로운 전환 가능성을 표명하고자 하는 캠프의 작업은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자본의 권력에 맞서 지역사회와 수공의 협력으로 공공·공동·공유의 개념을 재설계해 나간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 제목인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CAMP After Media Promises)≫도 두문자어 방식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에서 “캠프”는 작가명이자 “진영”이라는 보통 명사의 뜻도 될 수 있다. 작가들은 거대 미디어 인프라가 우리 삶과 가치 체계를 빈틈없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네트워크 미디어 환경에서 그 매체 기술들이 약속했던 전망에 개입하여 다른 여지를 만드는 “이후”를 제안한다. 전기와 에너지, 교통과 교역, 텔레비전과 라디오, 영화와 비디오,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지탱하는 “환경”이다. 그래서 각종 미디어들이 약속한 세상에 도달했을 때 그 미디어 기술이 독점적이고 권력적인 구조로 작동한다면 그 기술들의 이후를 다르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어떤 여지를 도모하는 작은 개인들이 모여 자율적인 진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캠프의 작업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작가들은 그동안 뭄바이, 맨체스터, 예루살렘, 카불, 샤르자 등 세계 각지에서 이와 같은 방법론과 개방성으로 작업한 주요작들을 선보인다. 극장처럼 조성된 전시실에서 8채널 대형 스크린 설치를 통해 7막의 이야기로 구성된 무빙 파노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에서 신작을 제작한다. 구도심과 도시재생이 공존하고 있는 지역의 건물 옥상에 무인으로 작동하는 폐쇄회로 텔레비전 카메라를 세우고 그 카메라의 동작을 안무하듯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며 주변 지역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내는 작품이다. 백남준이 1960년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예술 매체로 개척한 지 60여년이 흐른 지금 CCTV 카메라로 새로운 영화 만들기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최태윤 작가, 서울익스프레스의 전유진, 홍민기 작가가 협업한다.
또한 캠프는 베를린 ‘0x2620’의 얀 게르버와 함께 개발한 미디어 아카이브 시스템으로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에 소장된 비디오들을 가공, 분석하여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다. 미술관 자원으로서 비디오 아카이브의 오픈 소스화 방식을 제안하는 파일럿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전시와 나란히 열리는 마이크로사이트는 이러한 캠프와 백남준아트센터의 무빙 파노라마 스크리닝 njpcamp.kr, 서울 신작 스트리밍 cctv.camp, 아카이브 네비게이션은 njp.ma 물리적 공간에서와는 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웹 플랫폼이다.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는 미술관, 시네마, 아카이브, 웹사이트가 전형적인 쓰임새에서 벗어나 서로 교차하며 플랫폼 간에 “시프트”가 일어나는 환경으로서의 전시이자, 미디어로서 전시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경험하는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