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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육성민, 〈필라코뮤니타스〉, 2022, 트러스, LED 스트라이프 외 혼합재료, 2채널 HD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08:30, 가변크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은 2025년의 문을 여는 첫 전시로, 백남준아트센터가 동시대의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을 소개해 온 프로젝트의 네 번째 버전이다. 올해는 고요손, 김호남, 사룻 수파수티벡, 얀투, 장한나, 정혜선·육성민, 한우리로 구성된 국내외 7팀(8명)이 참여하여 정형화된 인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로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이 전시의 제목은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에 선보인 ‹랜덤 액세스›에서 유래하였다. 벽면에 오디오 테이프를 펼쳐놓아 관객이 마그네틱 헤드로 직접 소리를 만들어 내게 한 작품으로, 규범화된 개념과 형식을 탈피했던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혁신적인 예술 실험의 현장이었던 당시 전시에서 사용된 포스터에는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질문에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지적 탐구를 추구했던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의 회의주의적 사유가 녹아있다. 인간 이성의 한계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서 절대적 진리와 기존의 관습에 의문을 제기했던 그의 철학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앎에 대한 반문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행위음악가로 명성을 떨치던 청년 백남준이 ‘미디어 아트’라는 미지의 영토를 개척해 나가면서 스스로 되새겼던 하나의 모토였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몽테뉴의 물음과 “영속적인 불만족은 영속적인 진화”라는 백남준의 예술적 사유는 공명하면서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를 던진다. 참여 작가들은 현대 문명의 이면에 잠재된 가치들을 드러내고 우리가 규정해놓은 사고방식과 관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단단한 지층이 되어버린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며 그 틈새를 스며드는 빛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가 우리의 의식 속에 보이지 않는 경계들을 부드럽게 허물어내고,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을 일깨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