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1. 작가님과 작품 활동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박승순입니다. 음악과 사운드를 다양한 기술 또는 미디어 매체에 투영하는 작업 및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0년 우주를 주제로 한 EP 〈코스모스Cosmos〉를 발매하였으며, 2014년 물과 음악을 주제로 한 미디어 설치 연작 〈아쿠아포닉스Aquaphonics〉, 그리고 2017년 알고리즘 개발자 이종필과 공동개발한 AI 사운드스케이프 시스템 〈뉴로스케이프Neuroscape〉가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첫째로, 평소 존경하던 백남준 작가의 혼이 깃든 백남준아트센터라는 곳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매우 영광으로 다가왔습니다. 둘째로, 백남준아트센터 구성원 분들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전시, 워크숍, 공연 등 빠듯한 일정을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3. 사운드 예술과 시각 예술, 공연과 전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계시는데요. 특히 그간 개발자님과 함께 계속 발전시켜 온 〈뉴로스케이프〉의 경우,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사이버네틱스의 지점들을 이끌어내며 인간과 비인간의 인지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 공생을 위해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점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랜덤액세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획자로서 보기에 이는 백남준의 플럭서스 활동, 그리고 〈로봇 K-456〉, 〈TV 정원〉 등 사이버네틱스, 미디어 생태학의 사유들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백남준 작가와의 개인적인 혹은 예술적인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이종필 알고리즘 개발자와 2017년 초에 ‘뉴로스케이프’라는 시스템을 구성하면서 시청각-인지-기억-학습-상상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고에 관한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은 독립적인 개체로서 존재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과 또 다른 인간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생각할 수 있는 기계가 이제 막 처음 등장하고, 그 기계에게 그간의 길고 긴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학습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고, 혹시 편향되지는 않았을지,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계속 의문이 들었습니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요. 특히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라는 책을 교과서 읽듯 정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남준 작가가 기계 또는 기술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예술가였는가를 여러 텍스트 기록물들을 통해 유추해 보았던 것 같아요. 제가 대학원 석사과정 1학기 때 백남준을 선택하여 발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작가님의 작품 세계관이 무한한 피드백, 선(禪)이 관통한다는 것을 알았죠. 이러한 세계관은 계속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관점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미디어 인스톨레이션의 배치와 관련해서 〈TV 부처〉 연작 시리즈를 많이 차용하고자 했습니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짧게 보아도 재미있고, 깊게 보면 계속 그 안에 얽힌 암호를 해독하는 느낌이 듭니다. 늘 새롭죠. 제가 ‘미디어 아트’라는 분야를 처음 알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접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미디어’가 단순히 새로운 기술 매체로서의 미디어가 아닌, 과거의 전통적 미디어와 현재의 미디어,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작가로서 새롭게 표현 가능한 창작법을 고안해볼 수는 없을지, 혹은 감상자에게 새롭게 감상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볼 수는 없을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늘 음악과 사운드가 바탕으로 존재하죠. 백남준의 음악적 이해도와 네트워크를 통해 흡수했을 수많은 에너지들에 비해, 저는 아직 더 탐구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한참 남았지만, 국내 예술가 중 가장 흔적을 많이 남기고, 그로 인해 감히 백남준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신나게 세상을 바라보고 까불 수 있는 건, 정말 백남준이 남긴 귀중한 유산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4.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로 소개하셨던 작품과 공연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를 통해 〈소리분류학〉, 〈소리풍경 인지능력평가〉, 〈인공적인 소리풍경〉, 〈당신이 본 것을 말해 주세요〉 등 기존 뉴로스케이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거나 개념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영상/사운드 작품을 전시하였습니다. 이외에 〈상상적 소리풍경〉, 〈뉴로스케이프 릴레이 퍼포먼스(이하 NRP)〉 시리즈를 전형산 작가, 정진화 작가와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AI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인 워크숍〉은 뉴로스케이프 시스템을 구성하는 Max/MSP의 기본 패치를 이용하여 일반인들이 손쉽게 본인이 선택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뉴로스케이프 시스템에 업로드하고, 이를 통해 검출된 오디오 파일들을 제어함으로써 본인만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디자인하는 방식의 워크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5.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참여 이후 작품 활동과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이종필 개발자와 2020년 3월, AI 음악기술 스타트업 NEUTUNE을 설립하고, 지난 11월 카카오벤처스로부터 시드단계 투자를 받았습니다. AI 기술을 통해 음악과 사운드를 기반으로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을 진행해볼 예정입니다. 본인은 기업 내에서 여전히 아티스트로서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기존 뉴로스케이프 프로젝트도 좀 더 체계적인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최근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에서 〈Mixed Scape〉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인터리얼리티 관점에서 리얼리티-버추얼리얼리티 등으로 이어지는 믹스드 리얼리티의 스펙트럼을, 그간 진행해온 사운드스케이프와 대응해보니 신기하게도 재미있는 스펙트럼이 펼쳐졌습니다. 리얼 사운드스케이프, 폴리 사운드, 구체음악, 버추얼/인공적 사운드스케이프의 스펙트럼. 초기 단계의 접근이지만, 사운드스케이프를 바탕으로 그간의 역사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엮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외에 개인적으로 사운드스케이프 노동행위에 초점을 둔 두 개의 퍼포먼스 〈Human Labeling/Soundscape movement〉를 제작하여 발표했습니다. 인간-자연-기계의 관계성을 계속 분석하고,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실제로 우리 삶에 어떠한 작용을 하게 되는지를 서태리 안무가, 임호경 배우와 함께 실험해보았고, 이를 공연, 영화, 전시 등의 포맷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구상 중입니다.
6.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와 관련해 공유하고 싶으신 의견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전시 기간 동안 〈소리풍경 인지능력평가〉에 총 385명께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실제와 인공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응답률이 여전히 53%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앞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작품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들기도 했고, 실제로 우리가 청각적으로 세계를 어떻게 올바르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