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몸의 조건을 가진 동료들이 있다. 누군가는 작은 키로 더 낮은 곳을 잘 보기도 하며, 누군가는 예민한 귀로 섬세하게 공기의 흐름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본다는 것은 어둠안에서 냄새와 소리, 이야기 등으로 끝없이 상상해야 하는 감각이다. 더 멀리,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기대하는 <트랜스미션 타워>의 레이저 빛을 보며, 이 빛이 닿기 힘든 자리의 이들이 떠오른다.”(오로민경)
소리를 듣는 경험에 주목해온 작가 오로민경은 미술관에서 보는 경험을 다양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빛을 전하는 시간》(9.19-12.3)을 선보인다. 푸른 뒷동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시실 창가에 놓인 것은 벤치와 헤드셋뿐이다. 헤드셋에서 들리는 몇 사람의 음성은 해 질 무렵 장애인과 비장애인, 서로 다른 몸의 친구들이 만나 시간의 풍경과 빛에 대해 나누는 대화이다. 이는 작가가 사전 워크숍으로 청취한 다양한 감상 방식의 총합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백남준의 대형 설치 〈트랜스미션 타워〉의 레이저와 네온, 그리고 자연의 빛에 대해 나눈 감각의 대화들을 들으며 작품과 풍경을 다시 마주하기를 제안한다. “함께 본다”는 감각을 위해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지 고민에서 비롯한 《빛을 전하는 시간》은 전시 기간동안 다양한 협업자들을 초대해 대화를 이어 나간다.
작가소개
오로민경은 사람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소리의 풍경들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빛과 소리를 기반으로 작은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을 감각하는 시간에 집중하게 한다. 최근 몇 년간 장애, 난민, 이주, 분단이라는 주제를 만나며 한국이라는 지형 안에서 회복을 찾는 소리풍경을 만들어 왔다. 개인뿐 아니라 콜렉티브 활동으로 소리 설치, 퍼포먼스, 무대 연출 및 기획 등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주요 협업으로 분단 감각에 대한 가상의 박물관 ‘분단이미지센터’를 공동 설립해, 밀레니얼 세대가 주체가 되어 분단 사회의 표면과 내면을 되새기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또한, 소수자, 난민 문제에 주목하는 ‘작은빛’ 콜렉티브 활동으로 예술 실천을 통해 사회 갈등을 직시하고 연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왔다. 대표작으로는 2021년 소리 퍼포먼스 〈돌, 빛, 결〉, 2022년 사물극 〈연약한 기록들의 춤〉 등이 있으며 2022년 개인전 《폐허에서 온 사랑》을 열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
백남준아트센터는 2023년 8월 15일부터 12월 3일까지 라재혁, 한재석, 오로민경, 원우리, 조호영, 그레이코드, 지인 여섯 명(팀)의 작가와 함께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을 선보인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는 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을 공유하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은 전시 형식의 실험이자 미술관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도이다. 백남준아트센터 곳곳에서 백남준의 시그널을 증폭시키는 동시대 작가들의 계주는 미술관 뮤지엄숍, 카페테리아에서부터 전시장 한쪽의 창가와 랜덤 액세스 홀까지 각자 다른 시차로 이어지며 전시의 틈새에 개입하거나 충돌하며 생성되었다가 사라진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미술관이 백남준의 실험 정신과 현대예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을 이어간다. 신예가 제시하는 미술관의 활용 방식은 전시의 또 다른 이름들을 발견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 오로민경: 빛을 전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