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1. 작가님과 작품 활동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저는 게임, 인공지능 챗봇 등 인터렉티브 기술을 활용하는 미디어아트 작가입니다. 시각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라는 두 학제적 배경 하에 작품을 발전시켜 왔는데요. 인간의 시각 인지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인공 인지 모델의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동시에 작가의 입장에서 과학 기술의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2017년 ART+SCIENCE COLLIDE(영국문화원 주관, 대전아티언스 주최)에서 을 발표하여 최우수상을 받았고, 2018년 광주 ACC 레지던스 선정작가로 를 제작했습니다. 또 ISEA 2019 국제 전시 부문에 선정되었고, 2018년 서울문화재단 주관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전시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2019년에는 오스트리아 Ars Electronica에서 IEEE BRAIN WINNER상을 수상하였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인터렉션 작품 로 KOCCA 심사 1위로 선정되며 X-IMPACT 전시에도 두 차례 참여했습니다. 2020년에는 이탈리아의 뉴미디어아트 비평지 NEURAL.IT에 작품을 실었고, 일민미술관 등 국내 여러 공모전과 전시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작가 활동 초기에는 사진 작업을 주로 하였습니다. 첫 데뷔도 사진 개인전이었고, 작품 활동을 처음 소개하게 된 서적도 『월간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찍다 보니, 그 기술적 함의와 인간의 시지각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사진이 온라인에 촬영-공유-감상 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작업을 왜곡시키는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이러한 기술기반 예술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미디어아트 작품은 이라는 작품으로, 사진 촬영기 작품을 문래 폐공장에서 진행하면서 시각성에 대한 질문들을 과학, 기술적 개념으로 확장하여 더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간의 인지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게임 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인지적 노화를 가시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과학 융합 예술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의 박사연구 주제였던 인공지능 모델을 연구 목적과는 다르게 활용해 절대 인간적인 감상을 할 수 없는, 예술작품 감상을 하는 인공지능을 2년간 만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연구자 입장에선 자기 모순적인 작품이었어요, 프로그램으로 되게 만든 후 그것을 부정했으니 말입니다. 하필 이 시기에는 한창 알파고 발표 이후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지던 2018년이어서, 저는 시대를 역행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그게 흥미롭게 읽혔는지 2018년 광주 ACC 레지던스,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벌, 서울예술재단 표갤러리, 홍익대학교 현대미술연구회 등 여러 공모에서 선정해주셔서 많은 분들께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ISEA 2019, SIGGRAPH ASIA 2020 선정작으로도 전시된 바 있습니다.
이후 발전시킨 작품에서는 그 기술적 상상력을 과거로 회귀시켜 인간이 기계 주도의 발전으로 수동화된 시점이 어디서부터일까라는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그 당시 연구 중이던 인공 인지 모델이 여러 파일럿 테스트에서 얻어진 과학적 사실을 근간으로 했으며, 특히 세계대전 등 전쟁에서 이러한 자동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던 때였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기술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는 뒤로 한 채 기술만을 쫓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숨겨진 맥락과 근원을 파악해 내는 것이 주된 연구 내용입니다. 작품은 2018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에 선정되어 2019년도에 발표한 으로, 우리의 감각보다는 누군가의 지시나 판단을 따를 때 발생하는 기술의 위험한 이면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오래된 비행사의 헬멧 안 뇌파 측정기와 시선 트랙커를 연결해 인공지능과 실시간으로 시선 예측 가능성을 분석합니다. 이 작품을 흥미롭게 봐주신 여러 국제적 큐레이터들 덕에 NEURAL.IT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2.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서는 관객과의 전시 소통 방법에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는 점에서 큰 폭으로 작가적 성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간을 다루는 부분에서 굉장히 도전적이었고 즐거웠습니다.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드리자면, 랜덤 액세스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이음-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음-공간은 수출용 컨테이너박스 하나가 뒤뜰에 가로로 누워 있는데 그 폼이 마치 백남준의 공간에 불시착한 물품 배송 컨테이너처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제도권 안과 밖의 어딘가를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요. 예상보다 좁은 폭의 공간에 어떻게 몰입감 있는 환경을 구현할지를 며칠 고민하다 정윤회 큐레이터님의 제안으로 작품을 게임의 형태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시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제 메시지를 관객의 참여와 몰입을 어떻게 끌어낼 것 인가였던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의 개념이나 내용이 체험적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연 설명을 하지 않을 경우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그렇듯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관람의 경험을 주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라는 감염병으로 전시가 2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닫혀있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온라인으로 제안한 게임이 빛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3. 작가님은 시각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라는 두 가지 학제적 배경 안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죠.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고정된 예술 장르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나, 창작자와 감상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 등이 꾸준하게 드러나요. 이런 점들은 백남준 작가와도 맞닿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백남준 작가와의 개인적인 혹은 예술적인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곤 합니다. 작품을 통한 예술 개념의 확장, 그리고 표현의 대담성까지 백남준은 본인의 세상을 완전하게 보여주고 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술을 접하고 공학적인 시도를 통해 관객과 예술의 관계를 변형시키려 노력한 지점은 비유하자면 백남준의 티브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로 사진, 영상 이미지를 촬영하고, 제작하고, 업로드하고, 소비합니다. 우리의 시각 환경은 이제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또는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백남준 시절의 티브이보다 가볍고 작아진 디바이스입니다. 그 스마트 디바이스의 숨겨진 파이프라인을 전유하고, 예술로 만드는 창작의 과정이 저와 백남준이 공유하고 있는 혁명가의(?) 기질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개발자가 되었다면 모난 돌 정 먼저 맞는 수순이 되었겠지만, 작가로서는 행복하게 말썽을 피울 수 있습니다.
백남준 작가의 실험성은 현존하는 기술을 한참 뛰어넘어 그 이후까지를 통찰해 내고 나아가 예견했다면, 저는 역으로 예견보다는 과거로 돌아가 어떤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공학을 다시 전공한 이유기도 합니다. 그 내부를 알아야 무엇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작품에 사용하는 매체들은 신기술이어도 그 외부를 항상 과거로 숨깁니다. 70년대 소련 헬멧을 최신형 뇌파 의료기기 위에 씌우거나, AI 프로그램(1970년도에 개발된)을 만들고 그 구동 시스템의 핵심 데이터를 60~70년대의 오래된 환등기에 투사하는 식입니다. 저는 과거부터 이어진 인공지능, 네트워크, 생명공학 등등 기술에 대한 환상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아직도 구성하고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항상 우리가 바라는 결말로 우리를 이끌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과거가 예견한 미래가 정체된 미래란 고발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것을 굳이 찾고 싶지 않아 하는 거부감 내지 후회 같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환상이 사라진 곳에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 대신 과거에 대한 질문이 깃들었고요. 어디로 가야 ‘그’ 미래로 갈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의 근간에 자리 잡은 철학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4.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Vol. 7 《주사위 게임》에서 선보인 〈쥐들에게 희망을〉과 〈버스마크(BirthMark)〉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쥐들에게 희망을>은 연구자 P가 겪은 실패의 기록을 피실험체인 연구자의 쥐가 되어 경험하게 하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관람객들은 게임에서 실험용 쥐를 조작하며 상징적으로 구현된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적 진실 발견의 어려움과 의도치 않게 뒤따르는 희생을 직접 경험합니다. 게임의 과정에서 관람객들이 반드시 체험할 수밖에 없는 반복적인 실패의 경험을 통해 과학적 진실들이 딛고 서 있는 불완전한 근간을 상기시킨 작품입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수많은 과학적 연구의 결과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실제 대중이 복잡하고 다양한 과학적 성과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주사위 게임》전은 작가이자 연구자인 제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적 진리들이 딛고 서 있는 기반이 우리의 기대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때로 과학자의 연구와 실험은 필연적으로 희망과 의무감을 바탕으로 수행되는 반복적인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어떤 것이 은폐되고 있는지, 또는 대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지를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버스마크>는 제 박사과정 시절의 연구 실패에 대한 이야기로, 동명의 단편소설에서 모반(birthmark)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과학적 방법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영역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버스마크>는 3면의 프로젝션 스크린과 70년대 환등기 스크린을 통해 전시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인식의 결과물을 영상으로 제공합니다. 작품의 정보와 처리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오래된 환등기의 작은 화면과 연동되어 보입니다. 눈이 깜빡이는 것처럼 환등기의 슬라이드가 한 번 넘겨질 때마다 다른 작품이 인공지능의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사용된 인공 인지 모델이 개발된 시기에 맞는 오래된 환등기에는, 작품을 인공지능이 의미론적으로 이해한 내역이 함께 제공되는데요, 오래된 이 환등기를 통해 AI가 분석해 낸 의미는 300 단어 중 2-5 단어뿐이며, 작품이 추상적이면 추상적일수록 인공지능의 이해도는 급감함을 드러냅니다.
5.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참여 이후에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죠.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이후 진행하셨던 프로젝트들과 이후의 활동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이후로 코로나가 더 극심해졌지만, 다행히도 작품 활동은 지속했습니다. 10월에는 금천예술공장 다빈치 크리에이티브의 새로운 이름인 《Unfold X》전에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비엔날레 10년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해 게임형 극장을 제안했습니다. 이 극장은 기본적인 극장의 포맷과 다르게 관람객에게 몰입감을 주진 않습니다. 도리어 슬쩍 보다 관심이 없으면 지나치게 되는 개방적인 6각형 구조입니다. 사실 제 큰 공간적 모티브 중 하나가 기둥형 컨트롤 룸이었는데요, 이 작품에서는 미래의 극장이 더 쉬운 인터렉션 기술과 관객이 스스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을까라는 근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극장은 AI가 만들어낼 자동화된 미래의 세상의 컨텐츠를 이야기합니다.
먼저 은 AI가 창작한 로맨스 소설을 바탕으로 생성된 4개의 각기 다른 사랑에 대한 영상 작품입니다. 각양각색의 만남과 이별, 영원한 사랑 등을 주제로 영상에서는 소설을 읽게 하는 아바타를 통해 비주얼 포엠 형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막대한 양의 사랑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다면 사랑의 원형을 자연어 처리된 정교한 통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놀라울 만큼 묘사된 소설이 나왔고요. 소설에 나오는 영상도 모두 원래 인물들의 얼굴에 다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AI의 얼굴을 입힌 것입니다. 사실 제작했던 입장에서 더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이 Deepfake 영상을 만들었던 소스인데요, 최근 영화시장에서 제작비 단가로 인해 투자가 적어지면서 영화 대신 짧은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을 만드는 식으로 업을 바꾼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상들은 대개 로열티를 제공하면 사용할 수 있는데요.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 같고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아바타를 사용하거나 실제 이야기보다 데이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맨스 소설을 시각적 영상으로 보여주는 TV는 컨트롤 타워를 표현한 6각형 기둥에 설치됩니다. 이 영상은 전면 거울로 부착되어 AI가 제공한 소설과 영상을 읽는 내내 관객을 비춰줍니다. 하지만 거울을 정면으로 보던 관객이 몸을 살짝 틀면 어디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볼 수 없습니다. AI 기술은 자동화를 가속할 것이고, 그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데이터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알 수 없고, 그 데이터들이 편향될수록 알고리즘의 윤리적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이슈가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AI 극장은 핑크빛 미래로 인간을 현혹하지만 실상 AI가 가진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한 공간입니다.
AI 소설 프로젝트는 현재 다양한 버전으로 발전시켰고 일부는 전시 중에 있습니다. 먼저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예정인 Slow Future 랩과 함께 진행한 워크숍에서는 컨텐츠진흥원 교육과정을 통해 재난을 과거 소설을 학습한 AI로 대사를 공동 창작하는 재난 문학 생성기를 제안했습니다. 이 작품의 발전 버전은 현재 일민미술관 《1920 기억극장: 황금광 시대》전에서도 전시 중입니다. 여기서는 구보씨 AI를 제안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과거 사람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재미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아트센터 나비에서 진행 중인 《Play on AI》전에서는 실제 사랑과 관련된 고민, 연애 이별 등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을 익명 대화 앱에서 데이터를 가공해 <당신의 사랑 상담 봇>으로 제안했습니다. AI가 마치 사랑을 해본 것처럼 조언을 주더라도, 이것은 결국 학습된 낱말들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사랑을 모르는 AI가 쓴 글은 거짓이며, 그 글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기계가 만들어낸 인간을 향한 일종의 거짓된 감정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제가 1년간 준비해온 저의 개인전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자》전 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진행하였던 쥐 게임 이후 현재 플레이스막에서는 2개의 게임, <쥐들에게 희망을>, <기대치 않은 풍경>과 인스톨레이션 작품들 3점 <가상환경 조정기>, <버스마크>, <과학자의 빙고 게임>, 그리고 이 전시 중에 있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주사위 게임》전과 연장선상에 있는 이 전시에서는 그간 베일에 감추어 있던 연구자들의 삶을 전시의 중심으로 가져옵니다. 저는 과학적 발견의 속성이 실패와 성공의 문제를 떠나 정작 이 반복의 행위가 우리를 이끄는 방향, 인간 자신의 삶과 유기체들을 어떻게 변형해가고 있는 방식에는 무지하다는 것에 흥미가 생겨 이 전시를 제안했습니다.
6. 연초에 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된 이후 백남준아트센터와 꾸준한 교류를 통해 신작을 제작하고 선보이셨는데, 프로젝트와 관련해 공유하고 싶으신 의견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제작했던 <쥐들에게 희망을>은 제가 많은 애정과 시간을 들인 작품입니다. 실패를 격은 연구자를 섭외해 진행한 이 작품에서는 그 연구자의 일지를 바탕으로 그녀의 삶을 깊이 공감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게임으로 만드는 과정의 전반에서도 그녀의 연구는 중간단계에 놓여 있었기에, 결말을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밝은 결말로 끝을 낼까도 고민했지만, 밝은 이야기는 이미 정말 많으니까요. <쥐들에게 희망을>은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보이지 않은 장면을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이 아닌 과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의 일과인 연구의 과정이 바로 제가 주목했던 부분입니다. 일견에서는 과학 전반을 비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고 저 역시 자칫하면 그런 오해로 빚어질지 몰라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과학계 쪽 분들에게는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적어도 연구를 한다면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내용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다소 의아스러운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여하튼 게임은 끝이 조금 어두웠습니다만, 다행히도 실제 인물은 연구 끝에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관찰하던 입장에서 그녀의 연구 행위는 매우 고됐지만 끝내 보람을 얻었기 때문에 그녀의 삶을 일부 차용해 작품을 제작한 저로서도 기쁜 소식입니다. 만약 그 결과가 반영되었다면 게임이 조금은 밝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재미가 없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