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1. 작가님과 작품 활동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저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각 예술에도 관심이 많고 음악 연주와 작곡을 하기도 합니다. 미술을 공부하면서 제가 처음 가졌던 질문은 “음악과 시각 예술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영역입니다. 저는 특히 시각 영역과 청각 영역 간의 구조적인 상응 관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방식보다는 은유적이고 열린 사고가 가능한 개방적인 작업 과정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다보니 제 작품에서 언어는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물론 언어 자체는 사람들 간의 약속이기에 규칙과도 연관이 있지만,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맥락에서 소리의 인식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결과와 이에 따른 반향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2.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먼저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의 작가로 선정되고 참여하게 되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는 젊은 작가들에게 실험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저의 경우는 특히 작품과 연계한 퍼포먼스도 전시와 함께 준비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3. 사운드 예술과 시각 예술, 공연과 전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계시는데요. 여러 장르 혹은 감각의 인터미디어적인 특징이 돋보이는 지점이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획자로서 백남준의 플럭서스 활동, 백남준이 예술과 기술, 예술과 일상의 관계를 탐구한 측면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남준 작가와의 개인적인 혹은 예술적인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사운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접하게 된 것은 플럭서스 운동과 백남준 작가였습니다. 백남준은 원래 음악에서 출발했고, 그의 초기 퍼포먼스들에서는 음악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후 백남준의 예술은 비디오 매체를 활용한 실험으로 확장되었지만, 음악적 배경이 그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플럭서스 운동과 더불어 백남준 작가가 구현했던 것은 유머, 위트, 철학의 혼합체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작업을 지속해나가는 방식에서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4.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로 소개하셨던 작품들과 공연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세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C.A.G.E(도.라.솔.미 피아노 버전)〉은 저의 첫 번째 연작 중 하나를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작품은 7개의 음표 이름들—도, 레, 미, 파, 솔, 라, 시와 C, D, E, F, G, A, B—를 이용하여 멜로디와 단어(또는 사물)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커다란 새장 안에 설치한 피아노에서는 4개의 음, 즉 C(도), A(라), G(솔), E(미)만 연주할 수 있고, 다른 음들은 모두 소리가 나지 않게 조작되어 있습니다. 관객은 새장 안으로 들어가 4개의 음—C(도), A(라), G(솔), E(미)—만 이용하여 연주하게 됩니다. 작품은 음성 언어와 음악 언어, 물질성과 표상, 소리와 시각의 구조적 관계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작품 〈개망초 프로젝트〉는 개망초라는 꽃의 한국 유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개망초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일본을 통해 우연히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가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그 깊은 역사적 연관성으로 인해 개망초는 한국인들에게는 불행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개망초가 북미 기원의 꽃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이야기는 대체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개망초는 너무나도 흔한 꽃이 되어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망초의 기원과 발생, 한국으로의 유입에 관한 이야기가 갖는 상징적, 은유적 무게는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관계들, 특히 사람들 간의 (과거와 현재의) 권력관계, 그리고 개망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시 관람객들에게는 개망초 이야기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이 주어지고, 그들의 답변 내용은 음성합성장치를 통해 녹음되어 개망초 모양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게 됩니다. 전시 기간 동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서사적 내용들은 관람객들의 참여를 통해 변화하고 발전해 갑니다.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은 〈소리 단어 시리즈〉입니다. 케이블과 스피커 모양을 이용해 만들어진 두 단어 종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에서는 총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단어로서의 사물
소리로서의 단어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듣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 기간 동안 뮤지션들을 초청해서 몇 차례의 즉흥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새장 안에서 연주할 때는 어떤 악기를 사용하든 C, A, G, E 네 음만 이용해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작품들은 모두 언어, 음향적 혹은 음악적 표현과 시각적 표상의 구조적 연계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소리와 시각 간의 이 모든 추상적인 상응 체계들은 어떤 면에서는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실재적이고 물리적이며 구체화된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한 구실이나 도구와도 같습니다.
5. 그 후로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여러 전시에 참여하셨는데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이후 작품 활동과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 계속해서 전시와 퍼포먼스 작업을 모두 해오고 있습니다. 《와해양상》 전시처럼, 가능하다면 전시와 퍼포먼스를 동시에 선보이기도 하고요. 지난 2년간 사운드에 대한 연구를 하며 언어학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었고, 이것이 제 작업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저는 프랑스에 체류하며 비디오 퍼포먼스, 현대 안무가를 위한 작곡, 전시 등 여러 한국에서의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떻게든 진행해 보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면서요. 우리 대부분이 행하고 있는 현재의 방식이 물론 일시적인 것이기를 바랍니다. 다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6.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와 관련해 공유하고 싶으신 의견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저에게는 아주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그 외에도 백남준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제게 의미 있는 작가인지를 생각할 때, 그의 이름이 붙은 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다른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 자신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생명력이 깃든 프로젝트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