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는 2019년 7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특별전 《생태감각》을 개최한다. 《생태 감각》은 지구 생태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간의 권한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생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는 전시이다.
후기 자연, 혹은 인류세로 불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의 심각함을 느끼면서도 인간 종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땅 아래 묻어 버리는 지구 사용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구 절멸과 인류 멸종이라는 예언은 더 이상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며 매일의 밥상과 출퇴근길에 흡입하는 미세먼지로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재규정한다. 자고 나면 하나씩 생겨나는 쓰레기산, 플라스틱과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와 사막화된 땅은 우리의 일상이자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지구 서식자의 최상위층에 위치한 인간은 자본화된 플랫폼을 통해서만 정보를 습득하고 미디어가 제한하는 시공간을 살아가며 주어진 감각만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편향된 감각을 가진 최상위 포식자 인간에게 지구의 미래를 맡겨두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가져야할 생태학적 전망은 과연 무엇일까?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구 서식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생태적 지위를 새롭게 찾고자 한다. ‘생태적 리터러시’ 이기도 한 이 감각은 분절화된 사회 속에서 정보의 전달과 기술의 축적에만 골몰해가는 현 인류가 지구 환경 전체에 대한 비전을 토대로 회복해야할 생태적 감수성을 의미한다.
전시는 정원의 식물과 곤충들, 깊은 숲속의 버섯과 미생물, 바다 속 문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소와 개, 인간 기술의 오랜 재료였던 광물과 같은 생명/비생명의 존재들과 감응하며 생태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천이(遷移)를 상상하며 구성하였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선언처럼 전시장의 관람객들이 서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에너지를 나누며 지구의 새로운 존재자들과 연결되기를 기대해본다.
전시 구성
전시는 ‘인간의 자연’과 ‘서식자’ 라는 주제로 나뉘어 구성된다. ‘인간의 자연’에서는 인간에 의해 확장되고 구성되는 자연이라는 주제 아래 백남준의 <사과나무>, <다윈>, 이소요의 <TV정원: 주석>과 윤지영의 <에라,>, 아네이스 톤데의 <체르노빌 식물표본>, <갈랄리트>, <카본블랙>, 제닌기의 <선구체Ⅰ,Ⅱ> 가 전시된다. 텔레비전을 환경으로 인식한 백남준의 미디어 생태학에서 시작해 목가적 자연 풍경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기록한 이소요의 작품,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철회할 것을 요청하는 아네이스 톤데의 작품을 거쳐 기술의 재료가 되어왔던 물질을 새롭게 감각해볼 것은 제안하는 제닌기와 인간의 욕망과 기술 발전 사이에 균형 감각을 찾고자 하는 윤지영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를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운송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며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제안한다.
‘서식자’에서는 현대 생태학의 기원이 된 한정된 시스템으로서의 지구에 대한 성찰과 그곳에서 서식하는 서식자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박민하의 <대화77-08-12>는 달 탐사 이후 우주선 지구호로서의 한계를 인식한 인류가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시작한 우주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이다. 이어서 지구생태계의 오랜 서식자인 인간의 주거지, 도시 생태계의 이야기를 담은 리슨투더시티의 <장소상실>과 동물권에 대해 작업해온 조은지 작가의 신작 <문어적 황홀경>과 <봄을 위한 목욕>, <개농장 콘서트>가 함께 소개된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지구의 서식자로서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생명체들이 공존, 공생하기 위해 필요한 감각이 무엇인지 묻는다.
인류세를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시적 통찰과 감각을 보여주는 박선민의 영상 작품 <버섯의 건축>, <고속도로 기하학2>, 한반도의 멸종위기 식물의 서식처에서 소리를 채집하여 미래의 도서관 목록을 만든 신작 <속삭임과 잠의 도서관>은 이미 다가와 있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변이를 만드는 ‘발효’ 작용에 주목해 이를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제안하는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발효컬트>는 생태학을 정치나 경제와 같은 분과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으로 정의한 백남준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1960-70년대 반문화운동의 시기, 청년들이 실행한 공동체 실험에 주목하며 젊은이가 젊은이에게서 배우는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그는 하나의 분과로서 생태학을 규정하지 않고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생태학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으며 기술혁명이 있는 곳에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형식이 필요함을 간파하였다. 생태학에 대한 백남준의 비전은 인간 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당신과 우리가 함께 ‘인류세’의 시대를 통과해 나갈 수 있을지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해주어야 할 때이다.
생태학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경건한 세계에 대한 관념이다. 그것은 세계의 기획, 전 지구적인 순환, 인간 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너’ 아니면 ‘나’로부터 ‘너와 나’로의…변화로
백남준,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공동시장」,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