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 관둬라》는 대중문화, 특히 SF 장르에서 ‘디스토피아’로 묘사되었던 상황을 참조하여 재난과 재앙에 의한 인류 문명의 종말과 그 이후를 상상한다. 어쩌면 인간은 완전한 멸망으로 부터 스스로를 구원해내기 위해 일종의 메시지나 경고를 미래로 보낼지도(보내 놓았을 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파국 이후 살아남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필히 가닿아야 할 메시지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결코 그에게 전달되지 않아야만 하는 종말 이전의 어떤 것들일 수도 있다. 그 리고 그것들을 발견한 누군가 혹은 무언가는 마치 신화 속 ‘판도라’처럼 그것들의 봉인을 해 제하여 이를 온 세상에 널리 퍼트리거나, 숨겨 놓거나, 이를 통해 또 다른 욕망을 꿈꾼다. 전 시는 이와 같은 미래적 상상을 전개하지만, 그 상상된 ‘파국적 미래’에는 동시대 인류 문명의 ‘공포와 불안’이 내재하고 있다. 가장 복잡하고 빠른 속도로 갱신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현 인 류는 그만큼 예측불가능하고 비가시적인 공포와 불안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판도라의 상자 를 열지 말라는 금기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사유하고 대비하는 모든 일을 유예하고 ‘관둬라’며 조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한편 신화 속에서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어버리는 바람에 모든 죽음과 병, 시기와 증오가 세상을 뒤덮어버렸고,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남아 있던 유일한 것은 ‘희망’이었다. 과연 우리는 (______)하는 것 마저 관둬야 할 것인가.
《(______) 관둬라》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상상을 구현함과 동시에 ‘판도라’의 서사를 이에 덧붙여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가 갖고 있는 ‘공포와 불안’을 가시화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미 래적 상황과 과거의 서사를 옭아매어 시각적으로 제시하며 작금의 시대를 반추한다. 이를 위 해 콜렉티브에 참여하는 김정모, 이정우, 불량선인은 사전 설문 조사 등을 공동으로 기획·진행 하였고, 각자의 방식을 통해 서사를 구성하거나 개입하며 보충한다. 김정모는 가상의 미래로/ 미래로부터 보내진 봉인된 ‘판도라의 상자’를 설치와 영상을 통해 구현하는데 ‘희망’과 관련한 일상적인 사물과 표식 등의 이미지를 통해 이에 대한 동시대적 해석의 전형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정우는 영상을 통해 발견자의 인격체를 분열시켜 서사와 세계관을 구체화하거나, 외 부로 탈주하여 디지털 이미지로 재현한 아날로그 시계를 통해 시간성과 시각성에 대한 동시적 재고를 요청한다. 혹은 영상 촬영 과정 자체에 접근하여 디지털 문명의 가속화와 통제 불가능 성에 대한 일상적인 불안을 가시화한다. 불량선인은 급격한 속도로 기술적 전환이 이뤄지는 동시대적 특성에 의해 발생하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심리적 현상에 더욱 주목하는 심포지움을 개최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키는 ‘SF 장르’에 대한 비평적 접근으로부 터, 이것이 상정하는 파국적 미래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분석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