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관협력 전시 《다툼소리아》는 급변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의 환경 속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인간의 지각방식을 비롯하여 실재와 가상의 혼종의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술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가상과 실재는 혼종의 과정에 있으며, 그 어느 것이 우위에 있고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없다. 이 혼종의 과정에서 지각 체계와 의사소통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각각 한국과 중국과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비디오 아트(백남준)와 리얼리즘 회화(류 샤오동), 그리고 사운드 아트(카스텐 니콜라이)라는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매체와 인간의 지각 변화의 다양한 자장을 포착하고 있다.
⦁백남준(Nam June Paik)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던 백남준은 1974년에 쓴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플래닝”라는 글을 통해서, 인터넷과 같은 광대역통신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지식과 정보가 우리의 두뇌처럼 혼합되어 미래사회에서 주체이자 윤활제 그리고 인터페이스로 기능할 것이라고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징키스칸의 복권⟩(1993)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보여지듯이, 백남준은 교통, 이동수단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거나 지배하던 과거에서,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 없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새로운 미래가 올 것을 예견한다.
⦁류 샤오동(Liu Xiaodong, 중국)
류 사오동은 현대 중국의 삶을 대형 화폭에 옮기는 사실주의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인구 이동, 환경 위기, 경제적 격변과 같은 지구적 문제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담아내면서도, 세심하게 조율된 구성을 통해 인공적인 느낌과 현실 사이에서 미묘한 중립을 유지한다. 류 샤오동의 가장 최근 프로젝트인 ⟨불면증의 무게⟩(2018)는 기술자들과 함께 개발한 스트리밍 데이터와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자동화 시스템에 기반하여 제작된다. 도시가 잠들지 않으며 계속 변화하는 것처럼, 기계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카메라가 보내주는 데이터를 통해 그림을 그린다. 이를 통해 작가는 달라진 기술 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실재와 변화된 우리의 지각 체계를 암시한다.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 독일)
카스텐 니콜라이는 음악, 미술, 과학을 넘나드는 변환적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음악가이다. 그의 작품은 소리와 빛의 주파수 같은 과학적 현상을 눈과 귀로 인식하게 하여 인간의 감각적 인식이 분리되는 현상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는 과학계에서 일컫는 참조 체계에 영향을 받아 오류, 무작위, 자체 구성 구조뿐 아니라 그리드(grid)와 코드(code)와 같은 수학적 패턴도 즐겨 활용한다. 전시 출품작 ⟨유니테이프⟩(2015)는 초기 컴퓨터 시대의 천공카드를 암시하는 시각적 구조와 인식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작품이 연출하는 완전무결한 이미지와 사운드는 알고리즘의 순수한 수학적 정밀함을 담고 있다. 소리가 완전한 감각적 몰입을 만들어내기 위해 울려 퍼지는 동안, 데이터의 물질성은 형상의 영역을 무한한 깊이와 넓이로 확장시키며 프로젝션을 통해 나타나고 양 옆에 배치된 거울에서 고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