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만큼 다양한 미디어 사이에서 작업한 작가는 드물다. 하나의 순수한 미디엄이 아니라 미디어와 미디어 사이의 변증법을 강조하는 것이 인터미디어적인 접근이다. 인터미디어 예술 활동은 예술작품이 더 이상 물적 대상과 같은 유일품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동적인 과정’으로 표명했다. 이러한 인터미디어 예술은 기존 미술 양식과 자본에 잠식되어 가고 있는 미술시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삶의 미디어와 예술의 미디어가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인터미디어 극장≫에서 백남준은 가장 드라마틱한 배우였다. 그는 머리로 바닥에 선을 긋고, 바이올린을 내리치고, 피아노가 부서질 때 나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음악에서 비롯된 그의 플롯은 지루한 일상, 충격적인 폭력과 우연, 그리고 언제나 유머를 곁들이며 흘러갔다.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지만 결국 갈등의 해답은 인터미디어에서 찾았다. 비디오 안에 해프닝이 있었고 레이저 속에 비디오가 있었다.
백남준은 우리가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감상하고자 하는 안전한 거리를 침범해온다. 백남준은 우리 삶에 새로운 변수가 충돌해 올 때, 가지고 있는 미디어들을 적당히 버무리고 시공간을 조작하라는 속삭임을 들려준다.
백남준식 카타르시스는 ‘우리의 정신적 성숙’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 장소
- 백남준아트센터 1전시실
- 일시
- 2015. 6. 27.—2016. 1. 17.
- 기획
- 이수영
- 참여작가
- 백남준, 딕 히긴스, 만프레드 레베, 피터 무어, 벤 패터슨, 벤 보티에
- 주최주관
-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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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삼원소>
2000, 레이저, 거울, 프리즘, 모터, 스모크, 삼각형: 325x375x122cm, 사각형: 309x246x122cm, 원형: 287x234x122cm
백남준이 마지막 순간까지 실험과 가능성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레이저
작품들은 ‘포스트비디오’라고 부를 수 있다. 레이저는 빛과 에너지의 힘으로 시공간을 재편하며 존재하는 매체이며, 백남준이 비디오를 통해 추구해왔던 주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레이저의 광선은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무한대의 시공간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레이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공간의 패턴은 역동적이면서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레이저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 즉 백남준이 평생 동안 음악과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거치면서 실험해온 비선형적 시간과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백남준, <머리를 위한 선>
연도 미상, 종이에 잉크, 200x71cm
라 몬테 영의 <컴포지션 1961>은 “직선을 긋고 따라가라”는 지시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영의 작곡에 백남준은 자신의 머리를 붓처럼 잉크에 찍어 바닥에 놓인 종이 위에 천천히 선을 긋는 신체의 움직임으로 답했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에 <머리를 위한 선>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강렬한 선은 백남준의 미세한 움직임부터 강렬한 존재와 행위까지 드러내는 시각적 결과물로 남았다. 텍스트(작곡)와 퍼포먼스 그리고 시각적 작품은 서로의 영역을 기꺼이 공유하며 가장 인터미디어적인 연결고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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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무어, <필름을 위한 선>
1964, 사진, 흑백, 40×59.5cm
<필름을 위한 선>은 작은 플럭서스 플라스틱 상자에서 시작한다. 뚜껑을 열면 투명한 빈 필름 루프와 못이 나온다. 필름에 못을 여러 번 긁어 스크래치를 내고 이것을 영사기에 돌리면 가장 지루하면서도 아름다운 빈 영화를 보게 된다. 필름 스크래치와 먼지 입자가 반짝일 때면, 이 영화는 빛을 통과시키는 필름이라는 물질성을 통해 오로지 스스로의 존재만을 드러낸다.
백남준은 1964년 “뉴 시네마 페스티벌”에서 스크린 앞에 다가가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고 스크린 아래 누워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했다. 피터 무어는 빈 영화 앞에 선 백남준의 퍼포먼스 순간을 사진으로 남김으로써 퍼포먼스와 기록 사이에 존재하는 작품의 진폭을 확장시켰다. -
백남준, <로봇 오페라>
1964, 그래픽, 21x27cm
백남준은 끊임없이 음악에서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음악이 아닌 다른 매체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로봇 오페라>(1965)에서는 백남준이 로봇을 원격 조종하는 <로봇 오페라>(1964)에서는 로봇이 첼로를 연주하는 무어먼과 함께 공연했다. <로봇 오페라>는 단순히 기계적 로봇의 참여가 아니라, 상업적이고 진부한 기존음악 대신 기계와 음악이 협연하는 신선한 해프닝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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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딕 히긴스를 위한 위험한 음악>
1964,종이에 잉크, 172x42cm
딕 히긴스는 1961년부터 일련의 스코어로 되어있는 <위험한 음악> 시리즈를 발표했다. <위험한 음악>은 말 그대로 청중이나 연주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음악이다. 따라서 연주자들이 공연 직전에 이를 취소해 버릴 수도 있다. 혹은 개념상 기존 음악에 반대하는 반음악으로도 볼 수 있다. 히긴스의 <위험한 음악 5번>에는 “백남준에 의한 것”이라고만 적혀있다. 그리고 백남준이 1964년에 작곡한 <딕 히긴스를 위한 위험한 음악>은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로 기어 들어가라”는 악명 높은 스코어를 담고 있다. 백남준과 히긴스의 “위험한 음악”은 음악과 퍼포먼스, 상상에 의한 촉각과 공감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 사이에 위태하게 혹은 유쾌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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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드 레베,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1978, 사진, 흑백, 20×25.4cm
걷다, 뛰다, 행인들을 바라본다, 생각에 잠긴다, 웃다. 백남준은 만프레드 레베에게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들을 찍어 달라고 청했다. 장소는 갤러리 22가 있었던 곳이고 그 곳은 백남준이 1958년에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를 처음 발표했던 곳이다. 당시 25살이었던 백남준은 다름슈타트 국제 여름 음악 강좌에서 자신의 첫 작곡을 발표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은 잘 성사되지 않았고 낙심한 백남준에게 손을 내민 것은 갤러리 22를 운영하고 있던 장 피에르 빌헬름이었다. 이후 빌헬름은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빌헬름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던 후, 백남준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행동을 통해 빌헬름을 추모했다. 삶의 미디어와 예술의 미디어가 하나가 되는 순간, 백남준 스스로가 가장 의미 있는 인터미디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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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코끼리 수레>
1999-2001, 혼합매체, 가변크기
백남준은 코끼리를 탄 부처가 이끄는 커다란 마차에 앤틱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기 그리고 축음기 확성기까지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많은 통신 기기들을 올려놓았다. 코끼리와 마차는 붉은색 전선을 통해 서로 이어져 있으며, 후면부의 앤티크 텔레비전 안에서는 코끼리들이 축구를 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가득 실은 마차는 케이블 전선으로 이어진 코끼리의 이동방향에 따라 정보가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오브제들과 새로운 매체가 혼합된 이 작품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의 시대에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통신이 전파되는 방식을 재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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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참여 TV>
1963/1998, TV, 마이크, 가변설치
<참여 TV>는 백남준이 1963년 첫 개인전에 선보였던 13대의 텔레비전 중 하나다. 관객이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로 작품에 참여할 때만, 텔레비전의 화면에 빛의 선들이 어지럽게 나타난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조작하는 기술을 통해 텔레비전 화면을 임의대로 바꾸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은 이러한 비디오아트가 해프닝과 퍼포먼스에 새로운 피를 수혈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텔레비전과 같이 이전에는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새로운 미디어와 기존의 예술을 만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담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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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보티에, <살아있는 플럭스조각>
1966, 라벨이 인쇄된 플라스틱 상자, 12×9.3×1.6cm
벤 보티에의 <살아있는 플럭스조각>에는 철창에 갇힌 원숭이가 밖을 내다보는 그림이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 붙어 있다. 실제로는 빈 상자인 이 작품은 열어보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자유와 상상이 가능하다. 플럭스 혹은 플럭서스는 라틴어로 ‘흐름’을 뜻하며 1960년대 독일과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가장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 그룹의 명칭이다. 플럭서스는 그 태생부터 해프닝과 퍼포먼스와 조각과 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었다. 플럭서스는 1961년 조지 마치우나스에 의해서 명명되고 개념이 정립되었으나, 한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흐름이었다. 백남준 역시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플럭서스는 그의 예술 정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1997년 플럭서스 운동을 기념하는 “경계 없는 예술 축제(A Celebration of Arts without Borders)”라는 콘서트를 기획했다. 밴 패터슨은 2010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백남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우리의 삶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질러 흐르는 ‘살아있는 플럭서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
피터 무어,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 더블 테이크>
1964, 비디오, 흑백, 사운드, 30분 05초
‘괴짜들’이란 뜻을 지닌 <오리기날레>는 독일의 작곡가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이 작곡한 음악극이다. 1961년 쾰른에서 초연 당시 무대감독이었던 칼 하인츠 카스파리의 의도는 배우와 화가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다. 피아니스트, 퍼커션주자, 카메라맨, 어린이들, 패션모델, 신문팔이, 동물조련사, 화가, 시인, 배우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출연하며, 백남준은 액션 작곡가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슈톡하우젠의 작곡처럼 정해놓은 시간 안에 자신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했으나, 매 공연마다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백남준에게는 시간과 내용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오리기날레>는 매우 엄격한 슈톡하우젠의 음렬 음악의 형식과 초기 해프닝의 느슨하고 즉흥적인 구조가 혼재되어 있어, 사무엘 베케트의 극처럼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한 성격을 띤다. 또한 여러 예술의 매체들이 한 무대 위에서 같은 시간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해프닝의 원형을 보여준다.
인터미디어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