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은 백남준과 같이 새로운 예술영역의 지평을 열고 끊임없는 실험과 혁신적인 작품으로 미술계에 영향을 미친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 전시작가인 더그 에이트킨의 “작가적 특성과 성취는 다양한 매체들을 연결하고 통합시키면서 매체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실험정신과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미술의 의미와 효과를 쇄신하는 작업방식에 있다”라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으로 에이트킨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미국 출신의 에이트킨은 다양한 예술 매체를 전방위적으로 활용하는 미디어 작가로 그의 작업 반경은 사진, 출판, 조각 및 건축적 개입으로부터 내러티브 영화, 사운드, 다채널 비디오, 설치미술 그리고 퍼포먼스까지 총망라합니다. 작가의 예술세계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는 문학, 음악 그리고 영화와 같은 다른 예술 영역들 사이의 점이지대에 대한 탐구입니다. 아울러 작가는 지난 수년 동안 <몽유병자들>(2007), <노래 1>(2012), <변화된 대지>(2012) 등과 같은 초대형 옥외 영상 프로젝션 작업들을 수행함으로써 국제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에이트킨의 영상세계는 사물들이 대기나 물 속에서 부유하듯 끊임없는 움직임을 재현합니다. 따라서 그 주제는 주로 여행이나 특정한 공간의 횡단 혹은 도심의 산책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과 환경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가운데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공간 속의 상황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그의 영상작업은 세계가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부단히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지닌 것처럼 멈출 수 없거나 때로는 불가역적인 운동에 저항하는 수단입니다. 이를 위해 에이트킨이 채택한 전략은 영화나 비디오의 선형적 스토리 전개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복수의 화면들이 비동시적으로 연결되거나 시차(時差)와 연기(延期)에 의해 상영되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시간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에이트킨은 동시대 미술에 영화를 도입한 같은 세대의 작가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영상 이미지의 구조만이 아니라 그 수용의 측면을 중시하는 미디어 설치미술 작가입니다. 따라서 다채널 비디오 영상이 복합적인 건축적 공간 속에서 설치되는 것이 그의 작업의 핵심입니다. 관객들은 때로는 미로와 같은 공간 속을 이동하면서 일반적인 영화관에서 느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시공간의 체험을 하도록 유도됩니다.
한편 더그 에이트킨의 《전기 지구》와 함께 국제예술상이 계승하고 확대하고자 하는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보여주는 특별전 《백남준 온 스테이지》가 개최됩니다. 백남준은 새로운 예술 매체를 발견해 낸 미디어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탁월한 공연예술가였습니다. 음악에서 출발해 시각예술로 영역을 넓혀나간 백남준에게 퍼포먼스는 전통적인 예술 장르를 뛰어넘어 관객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장이었습니다. 본 전시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와 자료로부터 길거리의 해프닝, 비디오를 찍기 위해 수행한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백남준의 다양한 작업들을 통하여 더그 에이트킨과 같이 신체와 움직임에 주목한 오늘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에게 백남준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해보게 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되는 더그 에이트킨의 《전기 지구》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처음 소개된 후 지금까지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에이트킨의 비디오 아트의 원형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에이트킨은 이 작품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여덟 점의 영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총 네 개의 방에 걸쳐 상영되는데 첫 번째 방과 마지막 방에서는 각기 하나의 영상을, 중간의 두 방에서는 각 방마다 세 점의 영상을 상영합니다. 좁은 방안에서 영상에 몰입하는 관객들은 시공간적으로 연장된 특수한 경험을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방 내부의 여러 지점들은 서로 상이한 이미지 시퀀스들과 사운드의 조합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암시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관객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종의 입체적인 ‘몽타주’ 작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전기 지구》의 주인공은 SF 영화의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같이 보입니다. 마치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듯한 미지의 도시들을 완급의 사운드와 더불어 가로 지르며, 주인공은 인적 없는 도심의 주변 환경들과 그 맥박과 리듬을 공유합니다. 공항 주변의 빈터, 자동차 세차장, 슈퍼마켓 주차장 그리고 무인 자동세탁소 등은 상이한 시퀀스의 배경이 됩니다. 이 장소들은 공항의 레이더, 날카로운 대각선의 가로등, 회전하는 감시카메라, 번쩍대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등을 연결고리 삼아 마치 ‘이음매 없는 조각보’와 같이 편집됩니다.
작가 및 작품
더그 에이트킨(1968년 생)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LA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입니다. 에이트킨은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을 졸업하였으며, 1997년에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한 이후, 뉴욕현대미술관, LA현대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리 퐁피두 센터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가진 바 있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기 지구>로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수상하였으며, 알드리치 미술관상(2000), 독일 쾰른의 예술영화 비엔날레 1등상인 독일 영화비평가상(2007), 휴스턴의 오로라 픽쳐 쇼의 오로라 상(Aurora Award) 등을 수상(2009)하였다.
에이트킨은 2007년부터 건물 외벽 등을 이용한 대형 야외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맨해튼에 소재한 빌딩들의 외벽을 이용하여 도시 일대를 확장된 영화관으로 변모시킨 대형 프로젝션 <몽유병자들>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2007년 선보였고, 2009년에는 브라질의 숲 한가운데 소닉 파빌리온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브라질의 이뇨칭(INHOTIM)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국경>, <검은 거울> 등과 같이 야외 공간 및 선박 등에 영상과 퍼포먼스가 결합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2012년에는 워싱턴에 있는 허쉬혼 미술관의 원통형 외벽에 11대의 고화질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영상과 음악을 함께 프로젝션하는 대작 <노래 1>을 선보인 바 있다. 2013년 9월에는 3주간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주요 도시의 미술기관들과 협업한 예술 프로젝트로 올라퍼 엘리아슨, 카스텐 횔레 등이 작가로 참여한 ‘유목적인 해프닝’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라는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였다.
※ 작가 공식 홈페이지 http://www.dougaitkenworksh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