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JP 커미션’은 2024년 백남준아트센터가 선보이는 새로운 형식의 전시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NJP 커미션’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의제를 다루는 중견 작가들의 신작을 제작하고 심화된 예술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미술관의 수행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미술관들은 코로나 휴관의 시기에 온라인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로 존재했던 전시를 송신하면서 관객과 부딪치고 만나는 세계를 상상했고, 사회 속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NJP 커미션’은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수행하는 미술관’, ‘실천하는 미술관'으로서 미술관과 예술의 의미를 다시 성찰한다. 이를 위해 확장된 예술적 사유를 위한 외부 큐레이터를 포함한 네 명의 큐레이터가 함께 전시를 사유하는 공동 큐레이팅을 진행했고, 동시대 예술의 맥박을 짚는 네 명의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앤 덕희 조던, 에글레 부드비티테, 우메다 테츠야, 최찬숙, 네 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표현 형식, 태도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당면한 동시대를 작가 본연의 예술적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하고 있다. 작가들은 몸짓과 소리로 만들어내는 비결정적이고 우연적인 퍼포먼스에서 사물과 자연, 비인간과의 연대를 표하고, 이주와 생태, 주변성에 주목하며 회전초, 미생물, 주전자와 조개 로봇이 함께 노래하는 다성(多聲)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시의 제목 《숨결 노래》는 각기 다른 네 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다루는 다른 톤과 목소리가 만들어낸 노래 소리를 상상하고 그 어우러짐의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혹은 각기 다른 불규칙한 리듬일지라도 각자의 소리로 충분히 어우러지고 함께 함을 말한다. 작가들은 인간중심주의로 인해 피폐화된 생태와 자연을 돌아보고 주변의 사물들과의 연대를 표현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미술관이 단지 아름다움을 ‘전시’하는 것이 아닌 동시대에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그것을 예술로 소통하는 현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술과 미술관,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은 다시금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함께 노래 부르며 나아갈 것이다.
작가소개
앤 덕희 조던
앤 덕희 조던은 인간과 비인간의 공진화 가능성을 탐구하며 영상 맵핑, 로봇과 기계 사물 등의 복합 설치를 통해 몰입감 넘치는 공상과학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생태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작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우주와 자연에 내재된 시스템과 작동 원리를 미생물이 거주하는 미시 세계로부터 포착하고, 하나의 모델을 구축하여 복합적인 세계로 확장해 나간다. 그가 창조한 세계는 바다와 육지가 불분명한 경계로 연결되고, 소란하게 움직이는 기계들과 혼종적인 사물들이 모여서 임의적 질서와 균형을 이룬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으로부터 비롯한 작가의 시선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범주화하지 않고, 위계 없는 연결로 긴밀히 얽혀 서로 관계 맺고 있음을 지시한다. 그의 최근 주요 작업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t)이 인간의 역할과 기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현상에 반하여 ‘인공 어리석음(artificial stupidity)’을 주제로 다룬다. 작가는 지능과 어리석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인공지능이 똑똑하다고 인식되지만 실제로 어리석은 선택, 방향,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지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인공지능이 아닌 ‘인공 어리석음’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앤 덕희 조던은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 바이센지 미술대학에서 수학하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에게 마이스터슐러린을 사사받았다. 쿤스트하우스빈(2024), 뉴욕 커낼 프로젝트(2024), 카를스루에 예술과 미디어센터(2024), 마이애미 비치 베이스 미술관(2023/2024), 바젤 전자예술의 집(2023), 비스뷔 발틱아트센터(2022), 몬트리올 모멘타 이미지 비엔날레(2021)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글래스고 현대예술센터(2024), 광주 비엔날레(2023), 런던 바비칸 센터(2023), 베를린 트랜스미디알레(2021/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24년 〈립 소사이어티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웁살라 대학교 지속가능연구 대학원과 발틱아트센터의 그라스 펠로우쉽(2022), 베를린 문화부 펠로우십(2021), 본 예술지원재단 펠로우십(2019)등에 참여하였다. 그는 구조 전문 잠수부이자 운동감각 전문치료사로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의 뉴미디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에글레 부드비티테
에글레 부드비티테는 음악, 시, 영상, 안무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퍼포먼스와 시각예술을 섬세하게 교차시킨다. 그는 2010년 빌뉴스 컨템퍼러리 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초반에는 비교적 언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부드비티테의 작업은 2015년 전후를 기점으로 퍼포먼스와 결합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그의 주된 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적인 규범과 개념, 성 역할, 고정관념 등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드비티테의 작품에는 집단의 무의식적인 힘과 개인의 관계, 신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의존적이고 침투적인 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부드비티테에게 퍼포먼스는 인간의 신체가 지닌 원초적인 몸짓이나 목소리를 사용하여 사회적인 공간과 통념의 견고함을 전복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자리한다. 2010년대 후반 그의 작업에서는 노래하기(karaoke), 잡아끌기(dragging), 달리기(running) 등 직관적이며 강력한 신체 사용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그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하며 다층적 형식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데,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가인 마리아 올샤우트카이테 (Marija Olšauskaitė)̇와 배우 줄리아 스테포나이티테 (Julija Steponaitytė)̇와 협업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에글레 부드비티테는 1981년 리투아니아 출생으로 현재 빌뉴스와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빌뉴스 예술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에서 오디오 비주얼을 전공한 이후 피트 즈바르트 인스티튜트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드비티테는 파리 프락(2024), 로마 국립 21세기 미술관(2024), 뉴욕 커낼 프로젝트(2023), 베니스 비엔날레(2022), 리가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2020), 시카고 르네상스 소사이어티(2019)를 비롯하여 로포텐 아트 페스티벌(2017), 런던 블록 유니버스 페스티벌(2017), 아트 두바이(2017), 아트 바젤(2015), 시드니 비엔날레(2014)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그의 작품은 빌뉴스 내셔널 갤러리, 말뫼 현대미술관, 스테델릭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이번에 선보이는 에글레 부드비티테의 <송 싱 소일>은 마리아 올샤우트카이테와 공동 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
우메다 테츠야
우메다 테츠야의 작업은 음악, 설치, 사운드, 연극, 퍼포먼스, 때로는 합창을 가로지르는 장르와 형식 너머 어딘가에 존재한다. 우메다는 대학시절부터 오사카에서 즉흥 사운드 퍼포먼스와 설치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해외 아방가르드 음악 페스티벌의 주요한 연주자로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작가의 장소 특정적인 사운드 설치와 퍼포먼스는 갤러리와 미술관, 극장, 비엔날레 등에 초청 받으면서 전형적인 예술 장르로 구분되지 않는 작가의 작품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공간에 귀를 기울이는 것, 공간 안에 사물을 배치하는 것, 사물의 재료를 소리로 듣는 것이 나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공간에 일상의 사물을 배치하고 움직이게 만들며 그것의 소리와 리듬 속에 작가 자신이 개입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장소 특정적인 사운드 퍼포먼스를 행해왔다. 작가의 작품은 닫힌 공간을 벗어나 재개발지역의 빈 집 설치, 오지 마을의 아이들과 만든 합창, 강을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만나는 도시의 사운드, 미술관과 극장의 숨겨지고 공개되지 않은 공간 안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참여시키는 퍼포먼스로 확장되었다. 우메다 테츠야의 작업 속에서 공연자와 관객은 쉽사리 구분되지 않으며 때로는 그 관계가 역전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물 또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 경계가 없는 평평한 운동장”을 꿈꾸는 작가의 작업 속 사물과의 관계들은 작고 개별적인 것들이 오롯이 각자로 존재하며 움직인다.
우메다 테츠야는 1980년 일본 구마모토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공부했고 현재 살고 있다. 도쿄 와타리 현대미술관(2023-2024), 벳푸 프로젝트(2020-2021), 후쿠오카 근대미술관(2019), 포틀랜드 현대미술관(2016), 오사카 브레이커 프로젝트(2014)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오쿠노토 트리엔날레(2023), 이시노마키의 리본 아트 페스티벌(2019, 2021-22), 사이타마 트리엔날레(2020) 삿포로 국제 페스티벌(2017)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최근 퍼포먼스 작품으로는 《리버 워크》(교토 엑스페리먼트, 교토, 2022), 《Age0, 9월》(다카츠키 컨템포러리 극장, 오사카, 2022), 《컴포지트: 변주/서클》(쿤스텐페스티발데자르, 브뤼셀, 2017), 《인턴십》(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6) 등이 있다. 2024년, 〈도쿄 컨템포러리 아트 어워드 2024-2026〉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최찬숙
최찬숙은 작품 제작의 과정에서 학제적 결합을 통해 동시대 사회적 문제를 예술적으로 실천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예술적 연구를 기반으로 물리적 이동과 정신적 이주에 대한 서사적 실험을 탐구해 왔다. 작가는 어딘가에서 밀려나거나 새어 나올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의 이동으로 인해 생기는 진동과 표식을 주시하면서, 이들의 경로를 직접 추적하고 인간과 비인간이 남긴 주관적 존재 상황들을 다양한 형태로 기록해 왔다. 작가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역사와 사건을 예민하게 해체하면서, 지역에서 만난 목소리들을 작품 안으로 옮겨 미세한 빛, 다차원적 공간, 상대적 시간성으로 구축된 현상학적이고 유동적인 지형 안에 배치한다. 작품에서 배제된 생존자,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는 때론 시와 노래로 표현되며, 주요한 사건들은 픽션과 다큐멘터리로 혼합되어 이미지와 텍스트, 사운드를 통해 초주관적인 현실로 새롭게 재창조된다.
최찬숙은 현재 서울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서양화,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였다. 이후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실험미디어(Art and Media)와 비주얼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디어아트 마이스터슐러린을 취득했다. 주요한 개인전은 타이베이 디지털아트센터(2020), 서울 아트선재센터(2017), 베를린 훔볼트포럼(2017) 등이 있으며, 단체전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2023), 광주 미디어페스티벌(2023), 볼스부어그 미술관(2022), 타이페이 관두현대미술관(2022), 린츠 아르스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2019), “DMZ” 문화역서울284(2019) 등에 참여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작가상〉과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과 SBS가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9년 현대자동차가 주최하는 VH AWARD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본 예술지원재단 펠로우십(2021)과 베를린 시립미술관 오토와 오거스틴 박사 재단 펠로우십(2017)에 선정되었다.
숨결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