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8월 25일부터 11월 20일까지 1층 랜덤 액세스 홀에서 《필드 기억 Field Memory》을 개최한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인 <필드 기억>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미술가 김희천과 음악가 이옥경이 함께 만든 다채널 사운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본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들은 것만 기억하게 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면장애가 있는 주인공은 수면진정제를 처방받기 시작한 어느 날, 술과 함께 수면진정제를 복용하다 의식을 잃는다. 가까스로 깨어난 그의 뇌에는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데, 눈으로 본 것이 아닌 오직 귀로 들은 것만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달라진 기억 방식에 주인공은 무척 당황하지만, 그는 일단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며 그를 둘러싼 소리를 녹음 장치에 담아낸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과 떠오르는 생각을 목소리로 뱉어내며 기억을 붙잡기 위한 녹음을 시작한다. 그의 삶은 시각 중심적 위치에서 청각으로 움직이게 된다.
작품 <필드 기억>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기억의 방식이 달라진 주인공의 이야기에 따라 전개된다. 1인칭 시점에서 주체적/주관적으로 구성된 기억은 ‘소리의 기억’이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기억하기 위해 또는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주인공이 녹음하는 행위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현장 소리를 직접 녹음하는 ‘현장 녹음(field recording)’과 닮았는데, 이는 작품 제목 ‘필드 기억’에 대한 힌트가 된다. 아무런 시각적 정보를 주지 않고 오롯이 소리에만 몰입하도록 하는 사운드 작품 <필드 기억> 역시 관객들이 보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새롭게 소리를 인식하도록 돕는다. <필드 기억>에서 소리는 이야기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다. 소리는 거리와 공간을 만들고 리듬과 움직임을 만든다. 백남준이 자신의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에게 “30분 이상 볼 것”을 요구했듯이, <필드 기억>은 관객들이 이 공간에 지그시 눌러앉고 누워서 소리를 들을 것을 요청한다.
김희천과 이옥경의 협업은 백남준아트센터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김희천은 비디오와 설치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며, 이옥경은 첼로 즉흥 연주와 실험적인 퍼포먼스 등을 통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 작가는 활동 분야가 서로 다르지만 새로운 예술의 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는 점, 그리고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많은 동료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작품 〈필드 기억〉에서 김희천은 아무런 시각적인 요소 없이 낭독 및 지인들의 음성 메시지와 같은 사운드 작업을 제작했으며, 이옥경은 첼로 연주 대신 작곡가로서 다층적인 소리의 구조를 고안하였다. 두 작가는 그동안 각자에게 익숙했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이번 협업을 통하여 공동의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시각 대신 청각적 몰입을 요청하는 <필드 기억>은 우리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떠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자 동시에 우리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