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의선물1, 관점이동과시간성 –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따르면, A는 B에게, B는 C에게, C는 A에게 주는 선물의 선순환 구조를 근대 자본주의 산물인 ‘교환’ 개념의 틀에 끼워 맞추면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선물 행위란 보이지 않는 가치와 마음에 대한 답례와 의무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에게 예술은 미술 제도 안의 협애한 논리를 벗어나, 도래하는 전자화 세상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과 같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고, 위성에서 위성으로 전달되는 매개체와 같은 것이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될 세미나의 타이틀로 마르셀 모스의 ‘선물’이라는 개념을 빌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8년 10월 9일 백남준아트센터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백남준의 천진스런 글씨체로 된 사인과 함께 경기도와 맺은 계약이 8년이 지나서야 실현된 것이다. 이날 개막식에는 3개의 대형 깃발이 걸렸다. 첫 번째 깃발은 색면의 비율에 따라 태극기의 형태를 해체하여 스트라이프로 재구성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30세에 백남준이 그린 플럭서스 섬의 이미지가 새겨진 깃발이었으며, 마지막 깃발은 중앙에 Now Jump라는 백남준 페스티벌의 타이틀이 크게 새겨진 것이었다. 이것들은 백남준아트센터가 나아갈 기본 정신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백남준은 근대 민족국가의 갈등 구조 너머 인류의 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여 위성적, 생태적 관점으로 평생을 사유하였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백남준이 꿈꿔왔던 것은 ‘해방’이었다. 또한 이러한 해방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인 *“여기가 로두스섬이다. 지금 도약하라! (Here is a Rod, now jump!)”*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1957년 일본 동경대학에서 쇤베르크에 대한 논문을 마친 청년 백남준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아시아에서 온 키 작은 청년의 내면에서 솟아오른 마그마의 뜨거운 열기는 유럽 중심주의의 국가 체제를 넘어 지성의 새로운 회복을 일깨우기 위해 인간의 모든 감각들을 불러내는 복합적인 지적 혁명의 시작이었다. 청각, 촉각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관객의 능동적인 개입을 유도하면서 테크놀로지를 메시지 전달의 선전 도구로부터 해방시키는 백남준의 격렬한 시도는 당시 패전으로 주눅 들어 있던 독일 국민들, 그리고 가해자, 피해자 의식에 시달리고 있던 유럽의 백인들에게 적지 않은 해방감과 통렬한 웃음을 선물하였다. 일본의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말했던 것처럼,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감각과 사고의 야생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그것에 표현을 부여할 수 있는 지성의 형태로서의 예술을 청년 백남준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오픈 5일 전인 10월 4일(1965년)은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시작한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아직 상업용으로 출시되지 않은 소니 포타팩 비디오캠코더를 구입한 바로 그날, 마침 교황 바오로 6세가 뉴욕시를 방문하였고, 이것을 백남준은 라이브로 촬영하여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장소인 카페 ‘오고고’에서 샬롯 무어맨의 퍼포먼스와 함께 녹화 테이프를 상영했다. 가톨릭 교황을 비디오로 찍은 백남준이 비디오아트의 교황이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비디오아트의 기원은 이보다 거슬러 백남준이 1959년 쾰른 WDR 전자 스튜디오에서 전자 TV를 이용해 새로운 예술을 구상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1963년 엥겔스의 고향인 부퍼탈에서 가진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이 전시는 당시까지 각기 분화되어 진화해 온 본격 (high) 모더니즘의 음악적, 미술적 전통에서 볼 때, 금기시된 ‘연극성’과 동아시아의 샤머니즘, 선 (Zen) 등이 결합하여 이뤄낸 감각의 고원이었다. 백남준의 이후 작업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 전시의 발상을 변주한 것들이며, 특히 오늘날 전시에서 흔히 보게 되는 관객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의 핵심적인 작동 기제였다. 20세기 중반까지 전위적인 예술가들의 정신에 영향을 끼친 기계미학의 운동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자 테크놀로지의 시간 이미지로 관점 이동이 발생하는 출구에서 백남준에게 벌어진 우연적인, 그러나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백남준 예술에 대한 연구는 그가 이룩한 ‘믿기지 않는’ 위업들, 남겨진 기록들, 많은 작품들, 그리고 열광적인 몇몇 지지자들과 넓고 다양한 인간관계들에 비할 때,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조차 그 연구가 너무도 충분하지 못하다. 보이스, 케이지에 비할 때 그에 대한 조명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이론적 깊이가 없다. 예를 들어, 미국 국적으로 40여 년을 살았지만, 최근 뉴욕에서 발간된 통사적 성격의 미술사 이론서인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로잘린드 크라우스, 할 포스터 등 저)에서 백남준을 다룬 부분은 너무 빈약하다 못해 왜곡되어 있기조차 하다. 미디어와 고고학, 종교 인류학의 관계에 있어 그 어느 예술가보다 탁월했던 백남준의 사유의 깊이에 턱없이 못 미치는 지적인 한계 때문에, 그의 예술과 사유의 깊이는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거나 피상적으로만 언급되어 왔다. 저널리즘의 과도한 신화화, 혹은 국내 전문가들의 냉소주의, 그리고 국가주의/인종주의의 선입견이라는 장벽 속에서 백남준에 대한 연구는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백남준아트센터의 존재 이유가 있다.
백남준에 대한 오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다다가 20세기 예술의 DNA이고 그 중심에 뒤샹이 있다면, 그것의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에 비디오아트가 있다. 비디오아트는 모든 이미지 요소들을 시간의 콜라주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분자로 변질시키는 유목적인 전쟁 기계를 형성한다. 누구나 지니고 다니기 편해서 유목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파괴와 영속적인 변형을 그 속성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목적 매체이다. 따라서 비디오아트의 교황이자 선승인 백남준의 노마드 기질과 그의 예술은 정주민적 논리로는 해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음향, 퍼포먼스, 전자공학과 선, 샤머니즘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그의 예술은 서구인들(나아가 지난 20세기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며, 더욱이 현대미술의 제도 안에서 발생된 패러다임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실험해 온 백남준의 예술을 수용하기에는 기본 골격부터 너무 다르다. 그 결과 백남준은 근대적인 지식과 예술의 획일적인 부계적 전통 안에서 단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는 수식어구로 단순하게 이해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가 백남준아트센터 첫 국제 세미나의 소주제로 ‘관점 이동’을 내세운 이유이다.
또한 직관적, 종합적, 확률적 사고에 능통한 백남준이 이뤄온 예술적 실행과 지적인 탐구의 영역은 대단히 넓고 깊어서 접근할수록 난해하다. 그것은 앞으로 도래할, 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해왔으나 인식되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해 무궁한 지적인 호기심과 발견에 대한 욕망을 바탕으로 강렬한 우주적 화성학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백남준 예술에 대한 사유의 시간 프레임은 크로노스가 아니라 아이온의 시간 개념 속에서 시작과 끝이라는 두 개의 점을 가차 없이 파괴함으로써 열린다.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게임을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일찌감치 열려진 세계로 나가 아방가르드 예술의 치열한 현장에서 접전을 벌이며, 평생에 걸친 집요한 실천을 통해 백남준은 마침내 규칙을 바꾸어냈고, 우리는 이제 그 비밀의 문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그의 뒤를 쫓고 있다. 이것은 그가 빠져나온 20세기의 좁은 출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지적 여정의 첫 시작이다.
발제자소개
2009년 2월 4일
한나히긴스
ㅇ세상에서가장오래된 TV : 백남준초기작업에나타난시간과시공간
플럭서스 그룹의 주요 인물이었던 딕 히긴스의 딸이기도 한 한나 히긴스는 일리노이 시카고 대학의 미술사 교수이며 "플럭서스 경험"의 저자이다.
김수기
ㅇ청년기백남준의지적, 문화적자장
도서출판 현실문화연구 대표로서 미술 비평, 문화 연구 등 폭넓은 연구 매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시각 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의 디자인 02: 시각 문화의 내밀한 연대기” (공저)가 있다.
함성호
ㅇ식민지, 전쟁, 20세기 : 백남준의상처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는 “56억 7천만년의고독과성타즈마할“, “너무아름다운병” 등의 시집을 냈으며, 티베트여행을 담은 산문집 “허무“의 기록을 펴냈다.
미도리야마무라
ㅇ전체인간이존재론이다 : 전지구적맥락에서본백남준
뉴욕에 거주하는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이며, 비평가이기도 하다. 뉴욕현대미술관과 뉴욕주립대등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집으로가는길 : 뉴욕에있는현대일본작가“가 있다.
마리바우어마이스터
ㅇ2009년 1월 9일
1960년대 독일아방가르드 예술계의 프리마돈나로서, 슈톡하우젠과 함께 쾰론에서 운영했던 아틀리에를 통해 많은 아방가르드 퍼포먼스와 콘서트를 조직하였다.
2009년 2월 5일
이영철
ㅇ 월인천강, 달에홀린삐에로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 현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이다. 1997년 광주 비엔날레와 2000년 부산비엔날레,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예술감독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평론집 “상황과인식“, “현대미술과문화정치학” 총서(전 3권)이 있다.
김진석
ㅇ 현실적피난, 거기에서다시미학적으로피난하기: 백남준의 ‘정주유목성’에대하여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서 정치에서 문학까지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초월에서 포월로”, “이상현실”, “가상현실”, “환상현실”, “소외에서 소내로”, “기우뚱한 균형” 등이 있다.
바존브락
ㅇ 개선문
1960년대부터 요셉 보이스, 백남준과 함께 해프닝, 퍼포먼스 등에 참여했던 예술가, 미술 이론가로 현재 부퍼탈 대학의 미학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교수이다.
이진경
ㅇ 백남준: 퍼포먼스의정치학과기계주의적존재론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로 현재 수유+너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노마디즘, 꼬뮨주의 등 저항적인 삶의 양식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 등이 있다.
[백남준의 선물 1] 관점이동과 시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