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뛴다, 행인들을 바라본다, 생각에 잠긴다, 웃는다.” 백남준은 만프레드 레베에게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찍어 달라고 청했다. 장소는 갤러리 22가 위치했던 곳으로, 백남준이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1958)을 처음 발표할 수 있었던 곳이다. 당시 25살 이었던 백남준은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 하기강좌에서 자신의 첫 곡을 발표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잘 성사되지 않았고 낙심한 백남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갤러리 22를 운영하던 장피에르 빌헬름이었다. 이후 빌헬름은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빌헬름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 백남준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행동을 통해 빌헬름을 추모했다. 삶의 미디어와 예술의 미디어가 하나가 되는 순간, 백남준 스스로가 가장 의미 있는 인터미디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