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는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쓴 『걸리버 여행기』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 바닥에 누워있는 거인 <걸리버>는 총 길이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로봇이다. 총 11개의 오래된 텔레비전 케이스와 라디오 케이스 등이 걸리버의 몸을 이루고 있고, 모두 11개의 CRT 텔레비전에서 두 종류의 비디오를 보여준다. 하나는 사이보그가 첨단 미디어 환경 위로 성큼 걸어가고 있는 장면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자율주행이나 전자 도로를 질주하는 비디오이며, 또 하나의 비디오는 <로봇 K-456>과 전 세계 곳곳의 풍경과 컴퓨터 그래픽을 번갈아 보여준다.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백남준의 <걸리버> 역시 다양한 사회의 이야기와 상상을 담고 있다.
백남준이 걸리버와 함께 제작한 소인국 로봇인 릴리푸티언은 각종 기계 부품, 나사, 전선, 파이프 등이 그 몸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머리는 5인치 LCD 텔레비전로 만들어졌다. 로봇 머리에서 보여주는 비디오는 백남준이 제작한 <로봇 K-456>이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펼치는 퍼포먼스, 장난감 로봇의 작동 모습,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조작한 샬럿 무어먼의 퍼포먼스 등 다채롭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남준은 생기발랄한 릴리푸티언 로봇과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거대한 걸리버의 대비를 연출하며 로봇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걸리버의 온몸을 전선으로 포박하고 있는 연극적 상황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