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의 <야상곡 No. 20/대위법>은 일정한 시간에 동일한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연주가 끝날 때마다 피아노의 해머 88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빼내는 조율사가 만들어내는 이중주다. 퍼포먼스는 연주자와 조율사가 실행하는 각각의 독립적인 행위로 구성된다. 피아노 건반의 음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연주는 조금씩 해체되고 최종적으로 침묵을 향해 다가간다. 작품의 시간은 ‘음(音)’을 소멸시키고 우연의 소음을 만든다. 서로 독립적인 행위자들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피아노와 연주는 행위를 하는 순간마다 다르고 전시마다 움직인다. <야상곡 No. 20/대위법>은 플럭서스 예술처럼 우연적이고 불확정적이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악보 드로잉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구성하는 가장 낮은 음부터 가장 높은 음까지 모두 50개의 음을 분해하여 111장으로 표기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아바나의 뒷골목 공터에 놓인 낡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그 피아노 건반을 집요하게 갉아먹는 흰 개미떼의 이야기에서 착안하였다.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과 해법에 안주하는 예술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를 통해 미술관의 묵시적인 질서에 작은 균열을 일으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