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예술적 발상이 떠오를 때마다 읽던 책의 여백이나 식당의 냅킨 위처럼 그 순간 이용 가능한 지면에 서슴없이 기록해 나가기도 했지만, 수첩이나 공책에 작정하고 축적해 나가기도 하였다.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스누피를 표지로 한 50매짜리 이 메모장에 백남준은 주역의 64괘 중 41번째 산택손(山澤損)과 42번째 풍뢰익(風雷益) 괘의 일부를 필사하였다. 산택손은 자신을 비워내는 지혜, 풍뢰익은 타인을 돕는 지혜에 관한 괘이다. 한자들을 적어 나가는 유려한 필체에서 그 내용에 대한 백남준의 익숙함이 묻어난다. 수첩의 첫 페이지에는 물음표가 사람 옆 모습과 하트 모양이 되는 수학 공식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산택손(山澤損) / 손 유부(損 有孚) / 원길 무구(元吉 无咎) / 가정(可貞) 이유유왕(利有攸往) / 갈지용(曷之用) / 이궤(二簋) 가용향(可用享) / 단왈(彖曰) 손(損) 손하익상(損下益上) / 손이유부(損而有孚) / 원길무구(元吉无咎) / 이유유왕(利有攸往) / 갈지용(曷之用) 이궤가용향( 二簋可用享) / 이궤응유시(二簋應有時) / 손강익유(損剛益柔) 유시(有時) / 손익영허(損益盈虛) / 여시해행(與時偕行) / 산하유택(山下有澤) 손(損) / 군자(君子) 이(以) 징분질욕(懲忿窒欲) / 군자(君子) 이(以) 징분질욕(懲忿窒欲 / 손하익상(損下益上) / 손강익유(損剛益柔) / 손익영허(損益盈虛) / 여시해행(與時偕行) / 징분질욕(懲忿窒欲) / 풍뢰익(風雷益) / 익(益) 이유유왕(利有攸往) 이섭대천(利涉大川) / 익(益) 손상익하(損上益下) / 민열무강(民說无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