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을 만프레드 몬트베가 찍은 사진이다. 이 전시의 한 부분은 〈총체 피아노〉라 이름 붙인 네 대의 장치된 피아노였는데, 그 중 한 대의 이바흐 피아노는 문짝과 해머를 떼어내고 뒷면이 바닥에 닿게 눕혀져 건반의 위아래 현이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원래 백남준의 의도는 관람객이 그 위에 올라가서 걷거나 뛰면서 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시 개막일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타난 요셉 보이스가 홀에 들어오더니 눕혀 놓은 이 피아노에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러 피아노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백남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누구도 미리 알지 못했던 해프닝이었지만 백남준은 이 즉흥극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고 기억했다. 전시 공간과 작품들을 관리 중이던 몬트베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양동이의 물을 보이스에게 끼얹었다고 전한다. 이 피아노는 전시 기간 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었고 관람객들은 부서진 피아노를 구경하기도 하고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갤러리 주인인 롤프 예를링의 도움으로 부퍼탈의 명문인 이바흐가에게 직접 구한 이 오래된 피아노에 대해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만일 그 피아노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면 보이스의 첫 피아노 작품이기에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었던 우리는 두 동강이 난 피아노를 이바흐 가족에게 돌려주었고, 그들은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