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웅얼거리고 일렁거리는》전은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감정과 감각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이되며 확산되는지의 문제를 국내외 13명(팀)의 현대 미술작가들과 함께 논의해보는 전시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서는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자아와 타자간의 소통과 관계성이 매우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더 빨리,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세 가지 욕구를 기본으로 하여 발전해왔다. 초기의 인간은 자신의 신체나 말, 비둘기 같은 동물을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는 기차, 배, 비행기와 같은 기계의 힘을 빌려서 이 욕구들을 실현해왔다. 2차 산업혁명 후에는 모스의 전신이나 벨의 전화발명으로 인해, 세계는 통신혁명과 함께 실시간의 소통시대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지나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완벽하게 공유되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는 또 다른 소통혁명을 야기하고 있다. 상시접속과 접속평등의 시대에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접속하며 소통한다. 이러한 사회변화 아래 인간의 정체성은 초다중정체성, 초사회적 관계성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상호 간에 서로를 간섭하고 영향을 주는 일차적인 교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서로의 감성과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전이하고 감염시키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 자신 스스로도 정보의 바다에서 생성된 정보류에 감염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의도적 소통에서 비의도적 소통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 기계는 단지 정보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에 더 빠르게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포스트 인터넷 시대에 기계는 소통 수단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환경으로서 생산자와 수용자 둘 사이에 개입하며 간섭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이번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웅얼거리고 일렁거리는》전은 전시 제목에서와 같이 포스트 디지털 시대, 감정과 감성의 전이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 기술적 측면에서 더 나아가 인간 내면의 심리적 측면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동시대 우리는 고립과 외로움, 확장과 풍요로움 사이에서 ‘웅얼거리고 일렁거리는’ 몽환적 상황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 간의 관계에 기술 환경이 개입하여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경계를 연결, 희석시킬 때 발현되는 모호함은 다른 면에서 관용도의 확장으로도 나타난다. 이번 전시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새로운 감성과 감정의 전이현상과 함께, 자아의 주체성 상실과 주체성 확립 사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심리적 상황들에 대한 작은 질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