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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자기가 연주하는 동영상을 유튜브 또는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려 인기를 얻게 되면 역으로 기존 메이저 음반사가 접근해 와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 흔해졌다. 1960년대 백남준을 비롯한 미디어를 사용했던 예술가들의 작업 속도와 기술의 발전 속도를 현재와 비교하면, 미디어 환경은 비약적으로 변화하였다.

그 당시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했던 백남준을 비롯한 소수의 예술가들은 오늘날처럼 소프트웨어로 작업한 것이 아니었다. 기기를 이용하더라도 가격이 비쌌을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이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해야 했고, 그 안에 담을 내용을 창안해 내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이렇듯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었지만 백남준은 자신이 이용하고 구축했던 새로운 매체를 혼자만 향유하지 않고 다른 예술가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였다. 백남준은 관객 참여적인 퍼포먼스와 전시를 통해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 구현하고 있는 사용자가 적극 개입된 개념들을 선보인다.

〈텔레비전 방에 있는 토마스 슈미트〉,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1963 사진 만프레드 몬트베
▲ 〈텔레비전 방에 있는 토마스 슈미트〉,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1963 사진 만프레드 몬트베

1963년 독일에서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으로 첫 개인전을 끝낸 백남준은 미국 이주를 결심한다. 전시 역사상 처음으로 13대의 전자텔레비전을 이용한 전시를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에서 텔레비전은 저녁에 몇 시간만 방송을 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1960년대 미국은 무엇이든지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미국에는 텔레비전 수상기가 가정마다 있었고 케이블 텔레비전방송국이 태동하려는 시기였기 때문에 다양한 컨텐츠도 필요하였다. 백남준은 미국에서 자신의 창작 의도를 실험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음악 작곡에서부터 시작하여 액션 뮤직을 통해 음악의 한계를 실험하던 백남준은 1963년 개인전을 통해 음악을 전시하고, 관람객의 참여를 요하는 새로운 예술 표현 방법을 선보인다. 백남준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예술에 있어 새로운 규칙을 창안하는 시도로 텔레비전, 선 수행을 위한 도구, 음향기기 등을 사용하여 조각도 그림도 아닌 ‘시간-예술’이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다. “음악에서 비결정성과 변동성이 중점 과제였던 반면 시각 예술에서 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매우 저 개발 된 새로운 매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백남준은 개인전을 마무리하는 글에서 밝혔다.

백남준은 개인전에서 못 다한 텔레비전 실험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위한 비용을 대기 위해 형님이 거주하던 일본으로 건너간다. 당시 중고 텔레비전 가격은 보통 사람의 4개월치 급여에 해당했고, 컬러 카메라 같은 경우 10년치 월급에 해당했다. 비디오 녹화기는 20만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백남준은 형에게서 받은 백만엔을 도쿄에서 모두 소진해버렸다고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 아베’에 밝히고 있다.

발명가 우치다 히데오의 소개로 만난 슈아 아베와 함께 백남준은 흑백카메라 세 대로 각각 빨강, 파랑, 초록의 세 가지 이미지를 채널 TV의 동시 신호를 이용해 화면에 합성하는 실험과 함께 움직이는 로봇을 제작한다. 무선 조정기를 이용하여 걸어 다니면서 콩을 배설하는 로봇 K-456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제2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로봇 오페라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는다.

백남준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마리 바우어마이스터는 당시 미국에 미리 정착하여 뉴욕 업타운 갤러리인 보니노 화랑에서 백남준이 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 1965년은 여러 가지로 백남준에게 의미 있는 해였다. 소니에서 처음 나온 휴대 가능한 비디오카메라를 650달러를 주고 구입하자마자 비디오 영상을 촬영한 일과 보니노 화랑에서 가진 개인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적 매체로서 TV〉, 하워드 갤러리 전시 리플렛 이미지, 1969
〈창조적 매체로서 TV〉, 하워드 갤러리 전시 리플렛 이미지, 1969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변조한 작품과, 비디오 작품을 선보이며, 뉴욕 예술계의 관심을 받게 된다. 백남준은 곧이어 키네틱 아트에서 비디오 예술을 선보이기 시작한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창조적 매체로서 TV(TV as a Creative Medium)’라는 제목아래 샬롯 무어만과 함께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를 선보인다. 이를 눈여겨 본 보스턴 WGBH 방송국 관계자는 백남준과 당시 함께 전시했던 작가들과 함께 미국 역사상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첫 방송 프로그램인 ‘매체는 매체다(Medium is Medium)’를 1969년 선보인다. 이 프로그램 제작에 앨런 카프로, 제임스 시라이트, 탐 테드록, 오토 피네, 알도 탬벨리니, 백남준이 참여하였다. 이 여섯 명의 작가들이 만든 작품을 순차적으로 보는 30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백남준은 조작된 텔레비전을 스튜디오 안으로 가져와 카메라 세 대의 라이브 촬영을 일그러지게 한 화면이 가득한 〈전자 오페라 No.1〉을 선보인다.

백남준, 〈비디오 오페라 No.1〉, 1969
백남준, 〈비디오 오페라 No.1〉, 1969

유럽에서는 게리 슘이 1968년 ‘텔레비전 갤러리’라는 타이틀 아래 대지 예술가들이 제작한 영상 작품을 독일 방송에서 처음으로 선보였으나, 본격적으로 비디오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방송국과 작업한 것은 백남준 등 여섯 명이 처음이었다. 당시 제작에 관여 했던 프레드 바직은 처음으로 예술가들에게 TV에 대한 통제력을 준 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WGBH 방송국은 미국공공방송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1960년대 중반부터 실험적인 방송을 제작해 왔고, ‘매체는 매체다’의 방송 성공으로 예술가들이 방송국에서 레지던시를 하는 프로그램 비용을 록팰러 재단으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백남준 이외에도, 스탠 벤더비크, 로스 배런과 해리스 배런, 리처드 쉐크너 등이 첫 수혜자가 되었다. 백남준은 WGBH 방송국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국 기기에 접근하여 다양한 비디오 표현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영상 실험을 위해서 드는 스튜디오 기기 사용 비용이 엄청나 록팰러 재단으로부터 받은 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인가 새로운 기기를 만들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백남준,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 1969/1972
백남준,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 1969/1972

백남준은 록팰러 재단으로부터 1만불을 지원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슈아 아베와 함께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만든다. 백남준에 앞서 에릭 시걸이 흑백 신호를 빨강, 녹색, 청색으로 변환하는 시도를 한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제작하였다. 하지만 방송용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백남준이 원했던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원형이나 지그재그 같은 다양한 주사 방식, 비디오 피드백, 오디오 신호 혼합, 카메라를 이용한 재주사 방식이 가능한 것이었다. 백남준의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방송으로 나갈 수 있도록 미국연방통신위원회의 규범을 따라야 했다.

백남준,〈비디오 코뮌〉의 스틸 이미지, 1970
백남준,〈비디오 코뮌〉의 스틸 이미지, 1970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첫 방송용 작품은 ‘비디오 코뮌’으로 WGBH 방송국에서 제작된 4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비틀즈의 음악을 프로그램 내내 틀어주는 일종의 음악방송이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합성 이미지와 더불어, 일본 상업 방송을 자막 없이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너무나 유기적이어서 어떤 이미지를 반복할 수 없는데다, 색채를 영상에 과도하게 입히게 되면 트랜스미터 장비가 과열되어 파손되었기 때문에 방송국 기술자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이 WGBH 방송국에서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였다.

백남준은 이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과 뉴욕 WNET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신시사이저를 추가로 제작 하였다. 백남준은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방형 전자 환경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들이 제작한 신시사이저는 일종의 개방형 시스템으로 쌍방향 비디오게임의 원형이라고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 아베’에서 밝히고 있다.

보스턴 WGBH 방송국과의 레지던시가 끝나자 백남준은 록팰러 재단의 하워드 클라인 디렉터에게 보스턴 방송국과 같은 프로그램이 뉴욕에도 생길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설득하여 뉴욕 WNET 방송국에도 예술가를 위한 워크샵이 탄생하게 되었다. WGBH 방송국 관계자들은 백남준을 회고하면서 그는 자신의 임무가 더 많은 예술가들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비디오 매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제목 ‘비디오 코뮌’처럼 그는 일종의 공동 커뮤니티를 구현하고 싶어 했다.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이라는 그의 글에서 세계 평화와 지구 환경을 위해 누구나 소통이 가능한 음악과 춤이 중심이 되는 공영 텔레비전의 프로그램과 유럽공동시장 모델을 따라 비디오 공동시장을 형성하여 비디오 정보 유통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원화된 상업 방송의 대안으로 이를 제시하며 이런 대안적인 프로그램이 미칠 교육적 효과는 무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남준 당대에 실현되지 못했었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으로 그의 꿈은 실현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트위터, 팟 캐스트 등 정규 방송 이외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대안적인 매체들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교환 하면서, 중동의 재스민 혁명처럼 사회 곳곳에서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백남준이 위성 방송 프로젝트를 통해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뒤섞고, 방송국에 예술가들을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일조 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하면 인간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백남준은 1995년 첫 광주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1995-2015년 사이의 비디오 예술은 ‘비디오 예술/비디오 삶’의 쌍방향 소통을 이룩함으로써 스스로를 능가할 것” 라고 선언하였다.

백남준은 일원화된 문화가 아닌 다양한 층위를 가진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차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백남준 실험의 현재 진행형 속에 있다.

이유진(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2012.05.21

“소리를 전시한다”는 것에 대해 관객들은 별다른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운드 전시라는 것이 소리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그저 소리를 내는 도구를 보여주거나, 시청각을 적당히 섞은 전시물을 수사적 은유로 치장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백남준아트센터의 기획전 x 사운드=””에서는 이런 성급한 실망을 앞세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문제의 어려움(“x 사운드“라는 제목은 정의하기 힘든 대상에 대한 가장 솔직한 정의이다)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소리 자체’를 보여주는 문제에 미련하리만큼 진지하게 매달리는 전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들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존 케이지와 탄생 80주년을 맞는 백남준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존 케이지는 멜로디, 화성, 리듬 등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서양 음악을 자유롭게 하려는 고민 끝에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고 앉아있는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당황한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음(noise)은 음악(music)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예측할 수 없는 관객들의 반응이 곡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본과 독일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한 백남준은 케이지의 실험에 큰 자극을 받아, 그에게 경의를 바침과 동시에 그의 실험을 더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백남준은 피아노를 부수고 장난감, 종이, 심지어 속옷을 피아노에 붙여서 특정한 소리를 내는 물체들을 관객들이 하나하나 지켜볼 수 있게 했고, 더 나아가 흔히 ‘액션뮤직’이라 불리는 그의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구체적인 행동과 상황을 요청함으로써, 관객들이 직접 적극적인 작곡자가 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존 케이지와 백남준 각자의 사운드 실험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주요 작품들뿐만 아니라 서로의 예술 세계에 바치는 오마주들을 확인시켜 줄 귀한 자료들이 소개됩니다.

두 거장의 소리 실험들은 오늘날 작가들의 작품에서 좀 더 다양하고 매력적인 형태로 확장됩니다. 스위스 작가 지문이 만든 거대한 탑으로 들어가면, 관객들은 203개의 모터들이 일제히 종이상자를 두드리면서 내는 굉음에 둘러싸이면서 소리가 언어나 음악 이전에 신체를 자극하는 진동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지문의 거대한 구조물을 벗어나면 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연주되는, 안리 살라의 작은 드럼을 만나게 되는데, 그 드럼 뒤로 연인의 전형적인 이별장면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옵니다. 헤어짐을 종용하는 여자의 긴장된 목소리는 대답 없는 남자의 드럼소리에 묻혀버리지만, 바로 그 드럼 소리가 일으키는 공기의 진동 때문에, 여자 곁에 놓인 작은 드럼이 저 혼자 움직입니다. 소리는 각자의 복잡한 심경을 전달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고, 그러나 그 와중에도 소리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 지문 203 개의 장치된 모니터, 사운드 설치, 2012 ▲ 지문 203 개의 장치된 모니터, 사운드 설치, 2012

2014-02-11 13;58;45
▲ 안리 살라 <대답 좀 해>,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08

오토모 요시히데+야수토모 아오야마 <위드아웃 레코드>, 사운드 설치, 2012
▲오토모 요시히데+야수토모 아오야마 <위드아웃 레코드>, 사운드 설치, 2012

이번 전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리들은 단순히 공간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니라, 공간 속의 진동이 되어 관객의 몸 전체를 자극하고, 시각 이미지와 협연을 하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소리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유를 일깨우는 소리가 됩니다.

소리에 대한 감각을 새로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백남준아트센터의 (x_sound :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 )전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안소현(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2012.05.14

지금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엑스 사운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라는 존 케이지 관련 전시와 <존 케이지 콘서트>가 한창입니다. 존 케이지라는 인물이 좀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다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케이지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여러 행사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케이지의 <4분 33초>는 지정된 세 부분 동안 피아노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곡입니다. 이 세 부분의 시간을 모두 합하면 4분 33초가 됩니다. 케이지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보에는 찬사와 함께 혹독한 비난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1952년에 케이지가 <4분 33초>를 발표한 이후 후대의 예술가들은 케이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백남준 역시 그러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백남준은 1958년 독일의 한 갤러리에서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라는 곡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는 자신의 <피아노 포르테 연습곡>을 연주하다가 청중석에 앉아 있던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립니다. 케이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표명이었을까요? 그 이후로 백남준과 케이지의 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하며 같이 협업하는 관계로 발전해나갑니다.

이번 존 케이지 콘서트에서는 초기 작곡이라 할 수 있는 ‘장치된 피아노’를 사용한 레퍼토리와 후기에 숫자 제목으로 단 ‘숫자 시리즈’가 연주됩니다. 피아노의 현에 여러 가지 물건을 집어넣어 연주를 하면 북소리나 맑은 실로폰 소리로 피아노 소리가 변합니다. 케이지는 이를 이용해서 다양한 효과를 내는 피아노곡을 작곡했습니다. 이후 전자음악이나 테이프 음악 등 실험적인 음악을 작곡하다가 후기(1987-1992)에는 다시 클래식한 악기들을 사용한 ‘숫자 시리즈’를 발표합니다. 예를 들어 <7>이란 곡은 일곱 명의 연주자가, <101>이라는 곡은 101명의 연주자가 연주한다는 뜻입니다. 이 후기의 곡들은 매우 어려운 테크닉과 빠른 빠르기로 연주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곡이기도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서 에카핍 앙상블이나 콰르텟 가이아의 수준 높은 연주로 다시 해석될 것입니다.

전시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지만 전시장에서 만나는 케이지. 다른 관객들의 발소리와 아이들의 속삭임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다른 작품들의 사운드까지 이 모든 소리 환경이 케이지의 음악을 오늘날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되살려냅니다.

이수영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2012.05.10

2012년, 우리는 왜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까요? 올해는 백남준의 탄생 80주년인 만큼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국내외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탄생 몇 주년, 혹은 추모 몇 주기와 같이 기념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해서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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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주스에 적신 머리로 한지 위에 선을 긋는 <머리를 위한 선(仙)>을 통해 백남준은 인간의 한정된 신체 행위를 넘어 몸 그 자체에 집중토록 했습니다. 이는 전통과 습관의 틀에갇힌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본질인지를 되묻고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진 것이죠.

텔레비전 가까이에 자석을 갖다 대면 추상화와 같은 화면이 나타나는 <자석 TV>, 인터넷의 등장을 예견한 <전자수퍼하이웨이>, 위성통신을 이용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은 쌍방향커뮤니케이션이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형성하는 현재의 시대상을 예견한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을 일컬어 예언자로서의 백남준을 칭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미래를 예측했다는 사실보다 인간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와 덕목을 암시한다는 사실입니다.

1960년대 이후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텔레비전을 비롯한 기술의 산물들이 예술의 매체로 등장했죠. 백남준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예술과 비예술, 동양과 서양, 인간과 기술은 서로 대척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문명에의 찬양이 자연의 폄하를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문명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점으로 관객을 인도합니다. 백남준은 인간과 기계를 하나의 앙상블로 만드는 “기술의 인간화”를 위해 예술 작품을 매개체로 사용했죠. 다시 말해서 그의 작업은 기술과 자연, 기술과 예술, 기술과 종교의 대립을 무화시키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정하여 새로운 형태로 변환한 일종의 ‘발명품’인 셈입니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47분 37초, 컬러, 사운드,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2008년 개관 이후 전시, 학술, 교육, 퍼포먼스 등의 프로젝트를 통하여 백남준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은 백남준의 ‘발명품’을 온라인으로 전달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 집 안에 우리가 왜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집이 지어질 지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안경화(백남준아트센터 학예팀장)
2011.06.13

2010년 12월 17일부터 2011년 3월 13일까지 영국 테이트 리버풀과 팩트FACT(Foundation for Art and Creative Technology)에서 열렸던 백남준 회고전을 기념하여, TATE ETC. 매거진에 불프 헤르조겐라스가 기고한 글이다. 헤르조겐라스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백남준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로서, 1976년 쾰른 쿤스트페라인의 <백남준 1946-1976년의 작업: 음악-플럭서스-비디오>전이 그것이다. <지금이 바로 미래였던 때>라는 이 글에서 헤르조겐라스는 백남준의 초기 시절을 회고하며, 아티스트이자 반아티스트, 이론가이자 실천가,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반대하는 테크놀로지”를 사랑했던 백남준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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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oincidence with Nam June Paik’s retrospective in Tate Liverpool and FACT(Foundation for Art and Creative Technology) from 17 December 2010 to 13 March 2011, Wulf Herzogenrath wrote for TATE ETC this spring. In 1976 Herzogenrath curated the exhibition <Nam June Paik: Werke 1946-1976: Musik-Fluxus-Video> in Kolnischer Kunstverein, which was Paik’s first European museum exhibition. In this paper <When the future was now>, Herzogenath recollects the early days of Nam June Paik who was “both anti-artist and artist in one, to be a theoretician and practitioner of our networked world at the same time” and who loved “anti-technological technology.”

2011.06.13

<모음곡 212>는 원래 1970년대 초반 미국의 13번 채널/W-NET 심야 시간에 방송되던 5분 정도 길이의 비디오 시리즈 30개로 구성되어 있다. 백남준과 저드 얄커트, 더글러스 데이비스, 그리고 아나운서 러셀 코너 등이 협력하여 만든 이 시리즈는 백남준의 다양한 관점이 담긴 ‘뉴욕에 대한 개인적 스케치’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리즈 중 하나인 ‘뉴욕 판매’에서는 아나운서가 전달하는 뉴욕 시에 대한 통계 정보와 이에 대한 뉴욕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병치된다. 백남준은 여기에서, 텔레비전 방송처럼 거대한 정보 산업에 의해 지배되고 변화하는 뉴욕의 미디어 풍경을 비판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모음곡 212>에는 이 밖에도 뉴욕 메트로의 붐비는 풍경,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차이나타운의 거리 모습, 도시의 반짝이는 밤 풍경, 시민들과의 인터뷰 등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백남준 특유의 빠르고 현란한 비디오 콜라주와 캔디컬러를 사용한 전자채색(colorisation) 기법으로 뉴욕의 미디어스케이프를 포착해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미디어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전에서는 <모음곡 212>의 전 비디오들을 상영하고 있다. 벽면 프로젝션과 여러 가지 다른 모델의 구형 텔레비전을 통해 각 비디오가 함께 전시되며, 시리즈 중 한 작품인 ‘패션 애브뉴’는 백남준아트센터를 벗어나 서울역 광장 앞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에서 상영된다. ‘패션 애브뉴’는 뉴욕의 거리패션 풍경과 차이나타운 상인들의 모습, 패션 모델과 화장품 광고에 이르기까지 패션에 대한 다채로운 풍경을 콜라주한 작품이다. 대중 매체나 상업 광고들이 바꾸고 있는 뉴욕의 풍경을 스케치한 백남준의 비디오가 2011년 현재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디어스케이프를 다시 한번 변화시키고 있다.

(Courtesy of Nam June Paik Art Center & GanaArt MPlanet © Nam June Paik Estate, Source: NJP Art Center Youtube Channel)

* Mediascape, a pas de Nam June Paik

Nam June Paik’s <Suite 212> consists of thirty videos, about five minutes long each, which were originally broadcast after late-night TV programs of Channel 13/W-Net in the early 1970s. In collaboration with Jud Yalkut, Douglas Davis and Russell Connor, Nam June Paik produced this series as a “personal New York sketchbook” presenting the mediascape of New York from multiple angles. One of the series, ‘The Selling of New York’, for example, juxtaposes statistical information about the city enumerated by a TV announcer and diverse responses of New Yorkers to it. Paik reveals the city life changed and dominated by the mammoth media and information industries. There are other brilliant videos in the <Suite 212> series, showing crowded subway stations, Chinatown streets, glittering night views, building reconstruction sites, and interviews with pedestrians. Paik’s unique electronic collage using colorisation captures the cityscape in a flashy and rather dizzy way. The exhibition <Mediascape, a pas de Nam June Paik> in the NJP Art Center is showing the whole series of <Suite 212> in a wall projection and a variety of old television sets. In addition, one of the series was selected to go outside the NJP Art Center, specifically for the screening on the media facade of Seoul Square Building. It is ‘Fashion Avenue’, a dazzling collage of New York’s street fashion, Chinatown peddlers, fashion models, cosmetics commercials, and so forth. Through the grand screen of the Seoul Square Media Canvas, Paik’s electronic sketch of New York is changing yet again the mediascape of Seoul in 2011.

2011.04.26

1971년 설립된 Electronic Arts Intermix는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문적으로 보존, 배급하는 비영리기구이다. 2011년 40주년을 맞아 EAI는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 비디오아트 작품을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전광판에 상영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백남준의 1961년작 <손과 얼굴>이다. 흑백, 무성의 약 1분 42초 가량의 이 작품에서 백남준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다. 얼굴의 실체를 손으로 세밀하게 확인하는 듯한 몸짓은 백남준의 실존주의적 퍼포먼스라 부를만 하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전에서는 이 작품을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다 (4월 15일 ~ 7월 3일).

(Source: Times Square Public Art)

* EAI in Times Square: 40 Years of Video Art * Mediascape, a pas de Nam June Paik

Founded in 1971, Electronic Arts Intermix is a non-profit organisation devoted to preserving and distributing works of video and media art. For a week from 13th to 19th April, EAI celebrated its 40th anniversary this year with a special project to screen some of the influential video works from its archive, one of which is Nam June Paik’s <Hand and Face> made in 1961. In this video which is black and white, silent, running for 1:42, Paik strokes his face with both hands very slowly. The delicate gesture of the two hands as if to make sure that the face exists there as it is, can be called Paik’s existential performance. You can also watch this work in film in the exhibition <Mediascape, a pas de Nam June Paik> presented by the NJP Art Center (15 April ~ 3 July).

2011.04.21

1973년 백남준의 실크스크린 판화 <TV 의자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은 1940년대 대중 과학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 과학 잡지에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견하며 모든 가정에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실리곤 했다. 백남준이 이 판화를 제작하던 당시는 이미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보급되고 텔레비전 방송은 독점 사업이 되어 광고 등의 통신 내용이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백남준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가져올 변화가 인류의 소통과 상상을 도와줄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비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일방향으로 통신하는 텔레비전 방송에는 대항하고자 했다. 일방향 텔레비전의 대안을 추구하며 백남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아는가…?

얼마나 빨리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TV 의자를 이용할 수 있게 될지를?      얼마나 빨리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TV 채널을 갖게 될지를?      얼마나 빨리 비디오 아트를 위한 TV가 대부분 가정의 벽을 뒤덮을지를?”

백남준은 1968년부터 텔레비전과 의자를 결합한 작품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이 판화에서 제시하고 있는 디자인처럼 텔레비전은 착석할 수 있는 판이 되거나 의자 아래 모니터를 설치하여 앉은 사람은 텔레비전을 볼 수 없도록 하기도 하고, 또는 소형 텔레비전을  의자와 연결해 일체형으로 만듦으로써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여, 관객이 텔레비전의 물리적 성격과 전자적 성격을 함께 자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새 전시 <미디어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에서는 백남준의 이 판화에 기초하여 특별 코너를 구성하고, 백남준의 TV가 부착된 의자, 비디오 샹들리에, 폐쇄 회로를 이용한 시계, 그리고 다양한 비디오 영상 작품을 한데 모아 21세기 미술관의 미디어 환경을 백남준식으로 제시한다. 관람객은 이 공간에서 백남준이 예견한 미디어스케이프가 지금 우리 가까이에서 과연 얼마나 유효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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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의자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
Nam June Paik, A New Design for TV Chair
(1973, 실크스크린 판화, silkscreen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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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춤은 점프가 아니다, 문학은 책이 아니다 – 전시 장면
Nam June Paik, Dance is not jumping, Literature is not book – installation view
(1987/8, 갤러리 신라 소장품 Gallery Shilla Collection)

미디어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Mediascape, a pas de Nam June Paik)

 <A New Design for TV Chair>, Nam June Paik’s silkscreen print produced in 1973, depicts the image often featured in popular science magazines in the 1940s showing a future where every household would possess a television. When Paik produced this print, TV had already been widely spread and TV networks had been monopolized, broadcasting programs and advertisements unilaterally. Although Paik had a utopian vision that the development of media technology could help human beings with communication and imagination, he tried to stand up against the one-way communication of the TV network system. Seeking alternatives to unidirectional TV, he raised questions:

“Do you know…?

     How soon TV-Chair will be available in most museums?      How soon artist will have their own TV channels?      How soon wall to wall TV for video-art will be installed in most homes?”

Paik made a series of work that combines a television with a chair from 1968 in which, as suggested in this print, a television became a chair to sit on, or he put a monitor beneath a chair so that spectators could not see the screen, or he attached a small television to a chair so that they constitute a whole new piece of furniture. In so doing, Paik let spectators perceive the physical and electronic dimensions of TV.

In <Mediascape, a pas de Nam June Paik>, a new exhibition presented by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a special room is dedicated to the ideas behind this silkscreen, where Paik’s  TV-attached chairs, video chandelier, closed-circuit clock, and some of his videos come to form a  21st-century museum environment. Visitors will be led to think about how relevant the mediascape Paik

2011.04.20

리좀은 원래 생물학에서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줄기를 지칭하는 말인데,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의 고원>(1980)이라는 책에서 사용하면서 철학적 사유어로 통용되고 있다. 위계나 이원론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퍼져 나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탄생시키는 사고 방식을 뜻하는 리좀은 또한 웹사이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뉴욕 뉴뮤지엄에 본부를 둔 리좀은 뉴미디어, 인터넷, 디지털플랫폼에 기반한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사이트이다. 1996년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이 공유하던 메일링리스트에서 출발하였으며, 현재는 테크놀로지와 아트에 대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을 담은 미술잡지, 관련 정보자원을 축적한 아카이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에서 전시기획, 아티스트 커미션 등의 활동도 벌이고 있다.

rhizome.org

The word ‘rhizome’ is an originally biological term that indicates a horizontal stem of plant, and since it was used in the book <A Thousand Plateaus> by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it has become widespread as a philosophical concept. Non-dualist and non-hierarchical, ‘rhizome’ means a mode of knowledge production that allows for multiplicity and connectivity. Rhizome is also a name of a website whose office is located in the New Museum in New York. The Rhizome site deals with art based on new media, digital platforms and the Internet. Starting as a mailing list of artists working online in 1996, it has grown into an art magazine that carries out in-depth discussion, and also a digital archive that accumulates related historical resources. Furthermore, it organizes exhibitions and art events on- and off-line and commisions artists in the field of media art .

2011.03.07

백남준이 미디어아트의 개척자라 불리는 이유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미디어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가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 지금, 미술가들은 웹이나 디지털 기술 등 또 다시 새로운 미디어를 예술에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마저도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 지금, 과연 이 ‘뉴미디어’라는 용어가 유용한가,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시도가 활발하다. 2006년 ZKM의 페터 바이벨은 <포스트미디어의 조건> (Centro Cultural Conde Duque, Madrid)이라는 전시에서 “컴퓨터와 같은 뉴미디어의 영향이 보편화되고 다른 미디어의 미적 경험 또한 매개하게 되었을 때 모든 현대 미술은 포스트미디어 미술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10년에는 도메니코 쿼란타가 <미디어, 뉴미디어, 포스트미디어>라는 책(이탈리아어)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뉴미디어 미술’이란 매체에 기반한 특정한 미술장르나 미술운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뉴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사용여부와 상관없이 기존 미술계에 새로운 ‘미술’의 개념을 던지기 위해 생산되고 전시되고 논의되는 모든 미술이라 정의하고 있다. 쿼란타가 <포스트미디어의 관점>이라는 제목으로 리좀(Rhizome) 사이트에 기고한 다음 글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영문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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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stmedia Perspective> by Domenico Quaranta at Rhizome

 

Nam June Paik is known as a pioneer of media art not least because he was among the first artists using the then new mediums such as television and video in their art. Those mediums became ‘not new’ any longer, and contemporary artists today are using a yet another new medium such as the Internet and computers. Given that these mediums have become no longer new again, would the term ‘new media art’ be still valid and viable? In 2006, Peter Weibel, director of ZKM, in the exhibition <Postmedia Condition> (Centro Cultural Conde Duque, Madrid) notes that: “postmedia art is the art that comes after the affirmation of the media; and given that the impact of the media is universal and computers can now simulate all other media, all contemporary art is postmedia.” In 2010, art critic and curator Domenico Quaranta published a book <Media, New Media, Postmedia> in Italian (Postmediabooks), saying that “the label “New Media Art” does not identify an art genre or an art movement, and cannot be viewed – as it usually is – as a simple medium-based definition. On the contrary, a work of art – whether based on technology or not – is usually classed as New Media Art when it is produced, exhibited and discussed in a specific “art world,” the world of New Media Art.” You can read the final chapter of this book in English in the posting <The Postmedia Perspetive> by Quaranta at the above site.